글의 향기/찻잔 속의 글

쓸쓸함을 위하여 / 홍윤숙

vincent7 2013. 12. 1. 10:32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어떤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하고 
어떤 화가는 평면을 보면 모두 일으켜 세워 
그 속을 걸어다니고 싶다고 한다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모두 일으켜 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서까래를 얹고 지붕도 씌우고 문도 짜 달고 
그렇게 집을 지어 무엇에 쓸 것인지 나도 모른다 
다만 이 세상이 온통 비어서 너무 쓸쓸하여 
어느 한구석에라도 집 한 채 지어놓고 
외로운 사람들 마음 텅 빈 사람들 
그 집에 와서 다리 펴고 쉬어가면 좋겠다 
때문에 날마다 
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작은 집 한 채 지어놓고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