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우정을 건네준 재약산
1. 산행지 : 울주군 상북면 소재 재약산 (해발 1108m)
2. 산행일자 :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3. 산행코스 : 주암마을-심종태바위(776)-쉼터-재약산(1108)-주암계곡-주암마을(원점회귀)
4. 탑승지 : 08:30-장산역 10번출구 09:00-동래역 4번출구
5. 예상 소요시간 : 5시간 30분
6. 참석자 : 불새님(산행대장,찍사), 진아님(총무,찍사,갖은 반찬,따듯한 차),
산해정님(회장,운전), 아카시아님(커피,삶은 계란), 무천도사님, 인내님, 따봉(커피,찍사) 이상 7명
7. 날씨 : (울주군 상북면) 맑음. 강수확률 0. 습도 30(건조주의보). 풍속 2m/s. 최저 -7도. 최고 2도.
풀바람산악회는 장산에서 태어나 영남알프스에서 키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도 영알의 한 조각을 꿰맞춰 재약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날부터 서로 전화통화가 오가며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필 산행일이 올 겨울 들어 유별나게 가장 추운 날이기 때문이다. 매스컴은 난리다. 서울 영하16도, 철원 영하26도, 낙동강이 얼었다, 세계가 미니빙하기를 맞이했다는 둥...여건이 좋지 않을수록 도전에의 유혹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보온도시락을 싸들고 거리낌없이 집을 나섰다(08:10)
동래역 4번출구에서 어김없이 일행들이 모였다. 오늘 처음 뵌 아카시아님은 나중 거친(?) 산행 후 오랜 친구처럼 느끼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하던 한파 얘기가 나오고 산행지를 바꿀까하는 논의가 나왔지만 프론티어정신으로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하고 출발(09:00)
상행과 하행까지 운전을 맡은 산해정님의 수고로 들머리인 주암마을에 도착.(10:20) 덕분에 차량비도 극히 저렴한 3만원으로 아낄 수 있었다. 머뭇거림 없이 산행 시작.(10:27)
오른쪽 계곡길을 걸어 이내 가파른 능선으로 오른다. 초입은 항상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번은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된비알을 한 바탕 땀을 흘리면서 40여분을 올라가니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바로 심종태바위란다. (해발776m) 심종태 바위는 심종태라는 사람의 지극한 효심과 관련된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아까 차안에서 무천도사님이 설명했었지. 밧줄을 잡고 오르니 제법 괜찮은 산행기분이 난다. 폐활량이 문제인 나에겐 오히려 이런 코스가 한숨 돌리는 격이다. 올라서니 사방으로 확 트인 풍광이 나타난다. 야~ 이 시원한 기분. 시야 저 멀리에는 산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닿은 채 겹겹이 펼쳐져 있다. 손에 잡힐 듯 재약산이 다가서고 뒤를 이어 능동산, 간월산 등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단체로 사진 한 장. 마치 정상에서의 사진 같다. (11:25)
심종태 바위에서 재약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길의 연속이다. 능선 아래로는 주암계곡이 나란히 이어지고, 간간이 계곡을 훑고 지나온 칼바람이 눈언저리를 때린다. 산 길 곳곳에는 산바람에 씻겨 반질거리는 암릉들이 눈길을 끌고, 훌쩍 높아진 겨울하늘 아래 꿈같은 산행에 빠져 어느새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사고 발생지가 드러납니다.)
재약산을 가로막는 전망바위로 향하는 오르막이 다시 힘겨워 땀이 솟는다. 그런데 폼나게 들고 다니던 배낭물통 하이드레이션이 얼어 버렸다. 빨대 부분이 얼음이다. 나는 이후 하산때까지 조금씩 동료들의 보온물병에 의지하는 민폐를 범했다. 이 경험이 또 하나의 스승이 될 것 같다. 조금씩 늑장을 부린 탓에 완만한 길에 이르러 달음질치듯 속도를 내었다. 그래도 그렇지... 마치 산악마라톤하는 트레일런 선수들 같다. 난 못 가...
전망바위를 지나 완만히 내려가 여유롭게 쉼터에 이르렀다. 원목으로 잘 꾸며놓은 야외 스타벅스 같다. 그 옆에 허름한 대피소가 꾀죄죄한 천막으로 자리하고 있다. 쉼터에서 보이는 재약산 정상은 완만한 경사로 다가와 있고 오른쪽으로 천황산이 짝궁처럼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선 채로 약간 숨을 돌리고 정상으로 출발.
이내 가버리는 선두를 따라 진아님, 인내님과 셋이서 곧장 따라 나섰는데도 꼬리가 안 보인다. 제법 빠르게 10분여 걸어도 안 보인다. 엉뚱한 길이다.(12:30) 하~ 참내... 결국 휴대폰으로 연결해 길을 되돌아 합류했다. 큰 길 옆으로 나 있는 좁다란 오솔길 이정표를 못 본 것이다. 좀 기다려주지... 하긴 나는 풀바람 사고뭉치다. 오늘 벌써 들머리에서도 잃어버린 장갑 한 짝을 찾으러 혼자서 100m를 돌아갔다 왔다. 나는 언제쯤 민폐끼치지 않고 산행할 수 있을까.
재약산 정상.(13:10) 정상은 정상이다. 사방으로 펼쳐진 겹봉우리를 마음껏 끌어안아 본다.
무엇보다 우려했던 날씨가 너무 좋다. 찬바람도 햇살에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하늘은 가을보다 더 높고 푸르다. 정상석 바로 밑에서 식사를 한다. 진아님이 갖가지 반찬을 내어놓고, 아카시아님이 보온병을 3개나 챙겨와 컵라면과 커피, 삶은 계란과 함께 내놓는다. 여자들 짐이 더 무거웠으리라는 미안함도 잠깐, 다들 입맛에 찬탄하고 날씨에 찬탄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전국에서 가장 높이 있는 뷔페는? 풀바람뷔페. 정답!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하산을 시작.(13:50) 아까 만난 쉼터로 다시 내려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계속 내려가며 주암계곡 입구로 들어섰다. 만족스럽고 즐거운 산행에 노래도 흥얼거린다. 그늘에 자리한 잔설을 보며 드디어 계곡에 들어섰다. 계곡물은 꽁꽁 얼어 붙었다.
아~악! 줄지어 내려가던 바로 앞쪽에서 비명이 들린다.(14:15) 후닥닥 내려가 보니 인내님이 계곡빙판에 쓰러져 있다. 고통에 참다못한 신음이 이어지고 모두들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다. 일단 부축하여 바위에 앉히고 다친 왼발의 등산화를 벗겼다. 내 배낭에서 멘소래담을 내어 불새님이 조심스럽게 양말 안쪽으로 바르다가... 이를 어째... 복숭아뼈 반대쪽에 복숭뼈만큼 뼈가 튀어나왔단다. 산해정님은 임시 깁스할 양으로 나무를 잘라온다. 이것도 무리다. 결국 불새님의 판단으로 119에 전화했다. 이곳이 경남과 울산의 경계인지라 위치확인이 길어졌다. 그 사이 혹시 부축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무천도사님이 인내님 배낭까지 모두 3개의 배낭을 짊어지고 먼저 내려가 비상연락 대기조 역할을 하기로 했다.-나중에 이로 인해 무천도사님은 발이 접질려져 붓고 치료를 받아야했다.- 무천도사님이 출발하고 오래지않아 헬기를 보내준다는 연락이 왔다.
불새님이 지혜롭게 헬기를 보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잘 유도를 한 것이다. 산해정님과 불새님은 위치를 알릴 연기를 지피기 위해 얼음가운데로 낙엽을 쌓았다. 건조주의보가 난 상황이라 산불날까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내님은 오한에 벌벌 떨었다. 수건을 꺼내 다친 발을 감싸주니 약간 나아졌다하면서도 계속 떨었다. 진아님과 아카시아님이 안쓰러움에 체면치례 없이 부둥켜 안았다. 나도 자켓을 벗어 감싸주고 안고 비볐다.어찌나 떨던지...
멀리 헬기 소리가 들린다. 살았다. 불을 지피고 한 쪽에선 빨간 자켓을 공중으로 흔들어댔다. 다행히 헬기는 위치를 곧장 찾아왔다. 머리 위에 도착한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에 계곡 잎사귀가 싹쓸이 날아가고 우리도 넘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진아님, 아카시아님과 나는 발 못쓰는 인내님이 다칠세라 서로 머리 박고 인내님을 둘러싸 안고, 산해정님과 불새님을 불을 끄고 또 껐다. 헬기에서 레펠을 타고 소방대원 두 사람이 내려왔다. 거침없이 응급조치를 한 뒤, 인내님을 로프로 올려 떠났다. 헬리콥터 바람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멀리 사라질 때까지 다들 걱정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떠났다. 3시 45분. 드디어 긴장이 풀리면서 허탈한 몸으로 내려갔다. 주암계곡 왼편으로 내려가는 길은 제법 길고 폭도 좁았다. 부축하여 내려간다는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던걸 상상하니 아찔하였다. 그 정도였기가 다행이었고 헬기로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며 서로 위로하듯 말을 주고 받으며 원점인 주차장에 도착했다. (4:40)
뒤에 걸려온 인내님의 전화로 골절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리하게 부축했더라면 영원히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니 더욱 아찔하다. 해운대신도시에 도착(6:20) 국밥집에 들러 함께 하산주를 먹는데 순수파님과 모개천사님도 마중 왔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이제야 어슬어슬한 기운이 돌며 술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나는 진한 동료애를 느꼈다. 그리고 한파가 두려워 산꾼들이 사라진 한적한 산에서 맞이한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듯 어려운 여건은 더욱 큰 사랑을 확인해 준다.
재약산은 일년중 가장 추운 날, 따사로운 햇살과 따사로운 우정을 확인해 주었다.
Winter Story / Eric Chiryo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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