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향기/산행 후기

감동..두 다리와 세 손가락이 없는 9살 세진양의 로키산맥 등반기

vincent7 2012. 5. 1. 10:53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다"
로키산맥 해발 3천미터높이의 수목한계선.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때문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으로 구부러진채 자란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아무 쓸모없을 것 같은 기형의 나무로 말이다.


좋은생각에서 본 이 글을 세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로키산맥을 올랐다.

두다리와 세 손가락이 없이 태어난 세진이는 사회와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아픔을 겪었다. 세진이에겐 수백명의 동생들이 있다. 자신처럼 버려진 모든 아이들을 세진이는 '동생'이라고 부르기때문이다.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빨리 어른이되듯 9살짜리 세진이는 24살인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보통 또래 아이와는 달리 인생의 목표와 살아가는 이유를 습관처럼 되뇌이고 있었다.


이안 : "왜 힘든데 로키산맥을 오르니?"
세진 : "동생들에게 할수있다는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고싶어서요."


명확하고 아이답지 않는 대답에 순간 닭살이 돋았다. 혹시 어른들이 그렇게 대답하라고 연습시킨건 아닌가 의심이 갔다.


로키산맥을 오르는 2명은 세진이의 요청에 의해 선정됐다. 우리팀의 연장자이자 리더 한사현씨는 세진이의 인생 멘토다. 그는 6살때 소아마비를 앓고 두 다리가 불편하다. 국가대표 휠체어 농구선수였고 만능 스포츠맨이다. 지금은 '오또 복(Otto Bock)'이라는 세계적인 휠체어회사 직원이며 세진이의 든든한 후원자다. 그러나 휠체어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그가 산을 오른다는건 무모한 시도같았다.

그리고 나는 세진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수라는 이유로 팀원으로 추천받았다. 지난겨울 시작한 <100회 찾아가는 콘서트>가 세진이의 결정에 한몫했던 것 같다. 2집 음반을 녹음하는 중이라 주위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세진이의 당찬모습을 보고 함께가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한계',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린건 로키정상에 가까웠을 때였다. 이미 3일동안의 쉼없는 등반으로 지쳐있었고 지난밤 폭설로 길이 통제되었다. 그리고 사고위험을 느낄정도로 날씨가 안좋았다.

생전처음 체감온도 영하 35도를 경험했다. 살을 칼로 베어내는듯한 느낌. 상처난 부분에 알코올을 쏟을때 느낌.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때 가슴져리는 느낌과 비슷하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한발을 내딛는것조차 엄두가나지 않았다. 5m앞이 안보일정도로 거센 눈바람이 불어 몸을 뒤로 떠밀었다. 불과 3,870m정도의 러브랜드코스지만 사현씨의 핸드싸이클로 급경사를 오르고 세진이의 양다리에 착용한 의족으로 눈위를 걷는다는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세진은 무릎으로 기어서 한발한발 올라갔다. 그 모습이 하도 기가막혀서 나는 자꾸만 눈물을 쏟았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아홉살 세진이는 한번도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나도 너무 힘들어서 수없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아이는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묵묵히 일어났다. 정상에 섰을때 비로소 세진이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뭐가 그리고 억울했는지 한참을 엉엉 울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동생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겠죠? 난 동생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가 되고 싶어요!"


힘들었다며 투정을 부릴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진이에게 동생은 삶의 의미면서 도전의 이유였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들이 더 이상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는 아이.

한참 부모의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에 세진이는 피 한방울 섞이지않은 동생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장애때문에 겪어야 할 아픔을 정복하고자 했다. 그는 단순히 3870m 산을 오른게 아니다. 앞으로 그가 겪어야 할 수많은 인생 난관의 벽을 깨는 첫발을 디딘것이다. 세진이의 아름다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바람을 이겨낸 로키산맥의 무릎꿇고 있는 나무가 산을 오르는 우리에게 해준 말이 있다.

"아름다운 인생을 갖고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고난을 이겨온 사람"이라고.


[노컷칼럼 이 안]
.................................................................................................
신인가수 이안은 서울대 국악과 재학시절 두명의 친구와 함께 세계 20여개국에 길거리 공연여행을 다녀왔다. 오리엔탈 발라드풍의 <물고기자리>라는 타이틀로 대중음악에 도전했으며, 지난해 MBC-TV 음악캠프 6월의 신인상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가수로서 의욕적인 활동중에 있으며, 국악과 대중가요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등 대중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다가왔다. 현재 새 2집 앨범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