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주머니속의 애송시

산경 / 도종환

vincent7 2012. 5. 11. 12:01



산경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것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