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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가서 살고 싶다- 오륙도

vincent7 2010. 3. 3. 19:53

무인도에 가서 살고 싶다
[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 밀물 때면 섬이 여섯 개가 되고 썰물 때면 다섯 개가 된다 하여 이름 붙혀진 오륙도
ⓒ2004 이종찬
배를 탄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배를 탄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는 배를 자주 탔다. 마산 앞바다 저만치 고래처럼 떠도는 창원 귀산의 포도밭에 가거나 혹은 귀산 앞바다에서 조개를 줍고 도다리 낚시를 즐기기 위해….

8월 7일 토요일 오후 1시. 부산의 상징 오륙도에 가기 위해 해운대해수욕장 오른편 끝자락에 있는 미포선착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파라솔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는 해운대해수욕장에는 오늘도 모래 만큼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아니, 모래가 사람인지 사람이 모래인지 자꾸만 헛갈린다. 마치 신기루처럼.

저만치 튜브에 몸을 내맡긴 채 파도타기를 하는 아이들, 머리만 삐줌히 내놓고 모래 속에 몸을 묻은 사람들, 늘씬한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 그냥 모래 위에 엎드려 있는 여인들, 그 누군가의 모습을 애써 모래로 빚고 있는 검게 그을린 사내, 다정스레 손을 잡고 해변을 따라 그림처럼 걷는 연인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 뭍에서 가장 가까운 우삭도(방패섬, 솔섬). 지금은 두 개의 섬으로 보이지만 물이 빠지면 한 개의 섬이 된다
ⓒ2004 이종찬
▲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부산의 상징 오륙도
ⓒ2004 이종찬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북적대는 미포선착장에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가 고막을 찢는다. 한때 이 노래 가사 때문에 떠도는 소문도 참 많았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이 이 노래를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는 거였다. 오죽했으면 한국인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식민통치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겠느냐며….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그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곡해했는지는 몰라도 이 노래에 담긴 진정한 뜻은 그게 아닐 것이다. 내가 재해석한다면 이 노래는 적어도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하루 속히 부산항으로 되돌아오기를 애타게 기원하는 노래라고 말하고 싶다.

1시 30분에 출발하는 동백호에 오르기 위해 탑승자 신분을 적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키득키득 삐져나온다. 문득 20대 시절, 거제도에 가기 위해 탑승자 신분을 적을 때, 어떤 아가씨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성별(SEX)란에 '딱 1번'이라고 적으며 얼굴을 붉히던 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탑승자 표에는 성별을 구분하는 칸이 없어졌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는 칸 모두 한글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탑승자 표에는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었다. 특히 성별을 구분하는 칸에는 그냥 'SEX'라고만 적혀 있었으니 그 아가씨가 몹시 당황했을 수밖에….

▲ 두 개의 바위가 마치 포옹을 하는 남녀의 모습처럼 정겹다
ⓒ2004 이종찬
▲ 오륙도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는 굴섬
ⓒ2004 이종찬
1시 30분. 동백호가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와 긴 뱃고동소리에 어우러지면서 미포 선착장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이어 미포 선착장 앞바다에 동그라미를 그리듯 한바퀴 휘이 돈 동백호는 희부연 안개에 휩싸인 오륙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힘차게 파도를 가르기 시작한다.

저만치 해운대해수욕장을 모래알처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사람들, 끝없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너울지는 파라솔, 아득하게 환청처럼 들려오는 호각소리…. 마치 사막 위에 언뜻언뜻 신기루로 피어오른다는 그 허상의 오아시스 같다.

이윽고 동백섬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해송들만 우뚝우뚝 서 있다. 그때 저 해송 아래 동백나무가 많이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갑자기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가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울음소리까지 몽땅 삼키며 더욱 크게 들린다. 저만치 광안리해수욕장 앞에 하늘길을 열어놓은 듯 우뚝 걸쳐진 광안대교가 보인다. 광안대교가 이내 희부연 안개 속에 길을 감추자 이번에는 이기대가 손을 흔든다.

돌부처상의 바위가 있다는 저 이기대도 요즈음 공룡 발자국 흔적이 발견되었다 하여 남구청에서 이기대 일대에 어울 마당과 공룡 모형도를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기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수영의 의로운 기녀가 왜장에게 술을 먹인 뒤 논개처럼 함께 물 속에 떨어져 죽었다 하여 이기대(二妓臺)가 아닌 의기대(義妓臺)라 부르기도 한단다.

▲ 그 누구를 기다리는가? 혹시 나를?
ⓒ2004 이종찬
▲ 올 여름에는 무인도에서 살고 싶다
ⓒ2004 이종찬
이기대를 지나자 이윽고 부산의 관문이자 상징인 오륙도(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2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중 제일 처음으로 보이는 섬, 뭍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 바로 우삭도(32m, 방패섬, 솔섬)다. 바로 이 우삭도에 뚫려있는 너비 1m 정도의 해식동굴 때문에 우삭도가 밀물 때 2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오륙도라 부르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이 우삭도가 썰물 때에는 하나의 섬이 되어 다섯 개의 섬이 되었다가 다시 밀물 때가 되면 방패섬과 솔섬으로 쪼개져, 바로 옆에 있는 수리섬(33m), 송곳섬(37m), 굴섬(68m), 등대섬(28)과 함께 여섯 개의 섬이 되기 때문에 이 섬들을 오륙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우삭도는 분명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다섯 개의 섬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분명 여섯 개의 섬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우삭도를 지나자 이내 수리섬과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눈 앞에 다가선다.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섬 주변에는 낚시꾼들의 모습도 띄엄띄엄 보인다.

수리섬 곁에 떠있는 송곳섬은 정말 바위가 송곳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언뜻 바라보면 사랑하는 남녀가 진한 포옹을 하고 있는 듯하다. 송곳섬 곁에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굴섬은 오륙도에서 가장 큰섬으로 커다란 굴이 하나 뚫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굴의 천장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은 한 사람 몫의 음료수로도 충분하단다.

▲ 오륙도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등대섬(밭섬)
ⓒ2004 이종찬
▲ 오륙도는 등대섬을 제외한 모든 섬이 무인도다
ⓒ2004 이종찬
오륙도의 섬 중 뭍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섬 전체가 평평하여 '밭섬'이라고도 불렸으나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1927년에 이 섬에 등대가 세워지면서 등대섬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 등대섬이 오륙도의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다.

이 섬에서 등대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3개월 치 식량을 미리 갖다 놓고 산다고 한다. 왜냐하면 오륙도 근처는 조류가 매우 빨라 뱃길로서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항해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바다에 공양미를 던져 용왕을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수평선에서 용광로처럼 바닷물을 검붉게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일출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오륙도는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아름다운 절경 때문에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나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테지만.

낚시꾼들에게 고기가 잘 낚이는 곳으로도 널리 알려진 오륙도는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부산항을 드나드는 여러 선박들이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부산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안내방송에 따르면 날씨가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그리 맑지 않아 대마도를 보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 오륙도는 고기가 잘 낚여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2004 이종찬
오륙도에서 살아가는 식물은 다정큰나무, 용가시나무, 갯쑥부쟁이, 해국, 느릅, 보리 수, 사철나무, 땅채송화, 갯고들빼기, 갯장구채 등 50여 종이며, 조류로는 솔개, 매, 민물가마우지, 바다직박구리, 괭이갈매기 등이다. 바다생물로는 총알고동, 갈고동, 따깨비, 바위게, 대수리, 맵사리 등 60여 종.

나는 오륙도를 뒤로 한 채 미포선착장으로 통통거리며 돌아오는 동백호 뱃머리에 서서 희부연 안개 속에 조각배처럼 출렁거리는 오륙도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낚싯배를 타고 송곳섬이나 굴섬에 내려 오래 오래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위섬처럼 출렁거리고 싶었다. 그 섬에 가서 살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바람처럼.

/이종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