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주머니속의 애송시

능소화 연가 ....이해인/능소화....이원규/당신을 향해 피는 꽃....박남준

vincent7 2016. 8. 13. 15:51



능소화






능소화의 전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에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빈의 처소에 한번도 찾아 오지를 않았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기거 하게된 빈은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을 너머너머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 내지는 영양 실조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루어 지지 않은채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

라고 유언한 그녀의 시녀들은 그대로 시행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다.

능소화는 덩굴로 크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아무튼 능소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 합니다. 한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한 명의 지아비 외에는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꽃 모습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의 독소가 눈에 들어가면 실명을 한다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장미는 그 가시가 있어 더욱 아름답듯이 능소화는 독이 있어 더 만지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답니다.





능소화 연가....이해인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나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이해인의 꽃시집'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중에서 


 

 

 



능소화....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꽃시그림집'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중에서


 



 

 


당신을 향해 피는 꽃....박남준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 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내 기억 속의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해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박남준 시집'적막'중에서


 


 




 






 


 



FOEM:능소화 연가 ....이해인外


MUSIC : Morning Calm is Piano conener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