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탈랜트 김혜자씨 저서)
1992년 여름을 생각하면 아주 행복했던 일과
아주 슬펐던 일이 동시에 떠오른다.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은 내가 출연했던
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가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연기자에게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그래서 드라마가 종영되자마자
자축하는 기분으로 멋진 계획을 세웠다.
그 해 대학교를 졸업한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촬영 때문에 미루고 미뤘던 여행을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된 나는
소풍을 기다리는 유치원생처럼 들떠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여행 가방을 챙기면서
출발 날짜를 하루에도 몇 번씩 손꼽아 보던 어느 날,
나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월드비전이라는
단체의 회장이라는 분의 전화였다.
그 분은 월드비전이 세계적인 기독교 구호단체라고
소개한 후 아프리카에 함께 가자고 했다.
한국전쟁 이후 월드비전을 통해
외국의 도움을 줄곧 받아 온 한국이 그 해
비로소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
첫 번째 방문지로 에티오피아로 가게 되었으니
친선대사가 되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생각해보니 에티오피아 여행도 그럴싸할 것 같았다.
나는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기린과 얼룩말이
푸른 초원을 아름답게 뛰놀고 원주민들과 함께
정글을 헤쳐 나가는 흥미진진한 상상을 하면서
선뜻 허락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 해 여름,
나의 안 좋은 기억의 시작이었다.
아프리카는 신이 창조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상상했던 그 곳은
신에게 버림받은 상처투성이의 땅이었다.
극심한 가뭄과 계속되는 내전으로
사람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거리에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 어른들, 바닥을 드러낸 강 주변에
숨이 턱 막히는 악취를 뿜어대며 뒹굴고 있는
소떼와 양떼의 주검, 말라 비틀어진 엄마의
젖을 물고 있는 갓난아기,
눈과 입으로 수없이 파리들이 달려들어도
쫓을 힘조차 없어 큰 눈만 껌벅거리는 아이들.
어디를 가든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영양실조로 배가 불룩 나온 아이들이
파리가 잔뜩 달라붙은 얼굴을 하고서 나를 쳐다봤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곳에 머무는 열흘 동안 내 눈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쉬지않고 눈물을 쏟아 냈다.
세상에! 이렇게 처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니.....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그들 앞에서 괴로워하다가도,
밤이면 숙소로 돌아와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에
편히 누워있는 내가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서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인데
또 다른 곳에서는 빵 한 조각이 없어
죽음만 기다려야 한다는 불공평함에 화가 났다.
정말 두 번 다시 이 고통의 땅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다시는 이렇게 가슴 아픈 일로 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에티오피아를 다녀 온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 곳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후
월드비전에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겠다는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토크쇼에 출연할 때마다 바짝 마르고 눈이 퀭한
아이 옆에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진행자도
방청객도 모두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참상이 매스컴을 타고
내가 그 곳에 다녀왔다는 것이 널리 알려질수록
나는 부끄럽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너무나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칭찬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바로 다음 해 월드비전으로부터
소말리아에 가자는 제안을 받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에티오피아에서 받은 충격과 슬픔에 다시는
아픔의 땅에 가지말자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굳은 결심은 또 다른 사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구로 공단에서 일하면서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
모아 온 8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사랑의 빵’ 성금으로
쓰고 싶다는 아가씨의 전화가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그 후 12년 동안 전쟁과 기아로 고통을 받는 아이
들을 만나면서 나는 ‘아~, 정말 사랑은 명사가 아
니라 동사구나.’ 하는 걸 매번 깨닫고 있다.
만약 그 때 끝내 내가 소말리아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뉴스를 통해 죽어 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저 불쌍하다고 잠깐 느끼고 뒤돌아서면
까맣게 잊고 살고 있을 것이다.
신이 왜 우리에게 두 팔을 주었을까?
너무 가벼워 한 시간을 안고 있어도 팔이 아프지 않고,
땅을 밟아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안으면서 난 비로소 깨달았다.
‘두 팔을 세상을 바라볼 때 팔짱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안아 주라고
있는 거구나.’ 그런데 아프리카에 갈 때마다 듣는
주의 사항은 아이들을 껴안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아이들을 만졌다면 재빨리 손을 씻어야 한다.
병균이 옮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품에 안기는 것을 좋아한다.
나 또한 그 아이들을 안을 때 행복하다.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도 맑은 눈을 빛내고 있는
그 아이들을 결코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도 그 아이들이 눈앞에 있다면
분명 손을 내밀 것이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르완다, 시에라리온,
아프가니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우간다......
12년전만 해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나라,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 나라들이 이제는
촬영장만큼이나 중요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분명 촬영장하고는 다르다.
촬영장은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 공간이지만,
아프리카 난민촌은 현실이니까.....
만약 지옥과 같은 그 곳이 드라마가 끝나면
뜯어 버릴 야외 세트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차로 45분을 달려야 되는 거리를 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걸어오는 소말리아의 아이들,
먹을 것이 없어 심장과 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는 눈까지 멀게 하는 독초를
입 주위가 퍼렇게 될 때까지 뜯어 먹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
돈을 벌기 위해 지뢰, 질병에 무방비로 방치된
채로 떠돌아다녀야 하는 어린이 난민들.....
난민촌을 찾을 때마다 그 아이들 모두가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분장을 지우고
환하게 웃는 아역배우가 되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찾아가는 일을 언제까지 할 건가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할 수 있다면 생명을 다할 때까지 하고 싶어요.
그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끝날 때가 정해져 있는 드라마가 아니니까요
그 아이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나는 연기자가 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만난 후로는
대문호 톨스토이처럼 세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기자가 되라고 격려해 주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감사해 한다.
내가 연기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몸서리처지는
비극의 현장과 그 곳에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촬영을 마치고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수십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고, 장거리 흙길을 엉덩방아를 찧으며 달리고,
6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곡예하듯
사막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부끄럽게도 몸은 피곤한데 군용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고 샤워를 하고 싶어도
흙탕물이 나와 제대로 씻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집에 너무 가고 싶어 운적도 있다.
한참을 울다가 스스로 야단을 친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사는 아이들도 있는데
겨우 며칠을 지내면서 뭘 그러냐고 하면서.
지금 이 시간, 지구 건너편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어른들이 일으킨 권력 싸움으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사람은 바로 어린이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곧 배고픔이고 고통이다.
그 아이들 사전에는 ‘반찬 투정’ 이나
‘배불러 죽겠다’라는 표현은 없다.
세계 인구를 1백 명으로 축소시키면 50명은
영양부족, 20명은 영양실조이며 그 중 한명은
굶어 죽기 직전이라고 한다.
방에 굴러다니는 1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아프리카의 어린이 한 명이 하루 동안
굶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다.
매일 3만 5천명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
거나 전쟁터의 총알받이가 되고
2억 5천명의 아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사람들 3만 5천명, 2억 5천명을
단순히 숫자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여러분과 같은
소중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여러분이 받고 있는 사랑, 그 사랑을 조금만 떼어
아프리카의 친구들에게, 혹은 가까이에 있는
어려운 이웃 친구에게 조건 없이 나눠 주는 일.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다.
Mexican Sunrise / Tol & 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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