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억새밭에 가다
억새밭에 쪼그리고 앉아보니 나도 흔들리고 싶어진다
천천히 늙어가는 볕에
서리서리 얹힌 슬픔을 꺼내 하얗게 흔들고 싶다
산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파르라니 저녁이 깔리면
대궁 속에 숨긴 울음을 열어 소리를 내보내는 억새
흔들릴수록 울음은 종소리처럼 퍼져나가서
저물녘을 예감한 모든 억새가 어둠을 덮어쓰고 운다
한 번만 가보자 했던 길이 저물어 갈 때
나간 만큼 되돌아오는 길은 더 멀고 아파서
발목을 접지르며 돌아오던 가을이 있다
이제 그만 저물자는 말에
대궁 속으로 흥건하게 차오르던 울음을
이불 밑에서 꺼이꺼이 흘려보낸 저녁이 있다
'글의 향기 > 주머니속의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늘 그리워지는 한사람 ....... 이외수 (0) | 2012.10.20 |
---|---|
왜 나에게 왔는가 / 용혜원 (0) | 2012.10.19 |
이 가을이 저물기 전에 / 홍수희 (0) | 2012.10.16 |
행복한 기다림 / 이해인 (0) | 2012.10.15 |
나태주/ 멀리서 빈다 (0) | 2012.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