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향기/산행 후기

빗속의 2박3일 지리산 종주

vincent7 2010. 2. 14. 02:18

빗속의 2박3일 지리산 종주
오정옥  2005-08-26 14:16:49, 조회 : 2,285, 추천 : 6

지리산 종주기(2005년 08월 20일부터 2005년 08월 22일까지(2박3일간) 홀로산행
산행구간 : 성삼재-노고단대피소-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뱀사골대피소(1박)
           -토끼봉-연하천대피소-형제봉-벽소령대피소-칠선봉-세석대피소-촛대봉
           -연하봉-장터목대피소(2박)-천왕봉-장터목-참샘-백무동
산행시간 : 첫날 4시간. 둘째날 10시간 35분, 셋째날 4시간 50분 총 : 19시간 25분
산행거리 : 약 35.5Km
나이 : 49세
8월 20일 토요일. 비는 그렇게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11시경 노고단 대피소에 전화 확인 결과 11시부터 산행 통제가 해제되었단 얘길 듣고
부랴부랴 차를 몰고 구례로 향했다.
5분여 차이로 12시20분 성삼재행 버스를 놓치고 2시간여를 터미널에서 소일했다. 점심도 먹으면서
14시 20분 성삼재행 버스에 몸을 싣고 90여개가 넘는 커브길을 버스는 곡예하듯 잘도 올라간다.
14시 50분쯤 버스가 성삼재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재빨리 휴게소옆으로 비를 피하는데 아뿔사 버스에 모자를 놓고 내렸다. 다시 비를 맞고 모자를 가지고 와서 출발 준비를 한다. 다행이 비는 그치고, 자! 이제 출발이다.
10여분 오르니 또 비가 내린다. 비를 맞고 가다 안되겠다 싶어 비옷을 챙겨 입고 40여분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 취사장에서 한숨 돌린뒤,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한다.
출발시간 16시. 뱀사골 대피소에 예약이 되어있어 예정시간 3시간후에는 도착할 것이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앞서간 젊은 산객(남2,여1)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3년전에 지나 갔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돼지령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임걸령샘에 도착하니 2년전 이곳에서 김밥 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샘터엔 나를 앞서가던 젊은 팀이 쉬고 있다. 도착한지 5분 정도 되었단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자신감이 생긴다.
자! 또 출발이다. 반야봉이 가까워 오지만 구름에 가려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노루목에서 바로 삼도봉으로 향했다. 삼도봉 표시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꼭지는 수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닳고닳아 두루뭉실하게  황금색을 띠고 있다.
19시경 드디어 예정한 3시간만에 뱀사골 대피소에 도착했다. 취사장은 벌써 많은 산객으로 부산하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예약 확인후 저녁을 준비한다.
조그만 소주 한병을 3천원에 구입하여 반주로 들이킨다. 온몸이 짜맀하다.
나처럼 혼자 온 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동행인이 있었다면 산장 분위기에 함께 취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21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2년전엔 산객이 너무 많아 지그재그로 잠을 자다보니 상대방 발이 인사할 정도로 불편을 감수해야 했는데 오늘은 잠자리가 아주 양호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금새 바뀌고 말았다. 좁은 대피소 안에서 코고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새 잠이 들지 못해 뒤척이나 날을 새고 말았다. 이런 몸으로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아침을 햇반에 김치넣고 끓여 대충 먹고 07시 45분 2박 예정지인 세석으로 향한다.
여전히 비는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산행을 지치게한다. 이제 비옷은 아예 벗기 귀찮다. 10시경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 시원하게 캔맥주 하나 마시고 싶었는데 맥주는 없다. 산객도 별로없다. 날씨 탓이겠지. 2년전엔 이곳 마당에 산객으로 꽉 찼었는데.
연하천을 출발 형제봉이 나올때가 되었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앞서 가고있는 산객에게 물으니 이양반 아예 형제봉 자체를 모른다. 마침 뒤다르던 산객이 일러준다.
바로 앞에 형제봉이 있다. 함께 올라보고 가잔다. 작은 형제봉에 올랐다.
이곳에서 반야봉이 보이고 노고단도 보인단다. 난 이곳에서 백운산도 보인단 예길 들어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불행이도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리산 종주의 가장 큰 목적인 주변 산하를 보지 못한다는 게 섭섭하다.
갑자기 옆 산객이 야! 무지개다. 소리친다. 형제봉 바로 밑에 무지개가 떳다.
이곳에서 무지개를 보는 행운으로 섭섭한 기분이 한순간에 가신다.
12시 15분 벽소령대피소 도착. 점심 준비차 식수를 준비하기 위해 아래 200여미터를
내려갔다 오니 숨이 찬다. 점심 역시 간단히 햇반을 끓여먹고 잠시 휴식후
13시 15분, 종주중 거리도 멀고 무척이나 힘들다는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을 향해 출발. 1시간만에 선비샘에 도착했다. 주변에 산객이 몇팀 있다. 한 산객이 선비샘에 대한 유래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양반으로 태어나지 못해 받은 설움이 얼마나 컷으면 이런 선비샘이라는 이름이 생겻을까? 한 산객은 샘터에서 설것이를 하고 있다. 꼴불견이다. 15시 15분 칠선봉에 도착. 이제 1시간 정도면 세석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1박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 될 것 같다. 16시25분 세석 도착하여 매점에서 시원한 황도하나 구입하여 게걸스럽게 먹는다. 직원에게 장터목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후 예약을 취소하고 서둘러 장터목으로 향한다. 장터목까지 예정시간 1시간 30분. 그러면 도착이 18시경이니까 산행에 무리는 없겠다 싶다.
학생들로 보이는 3명의 산객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 그중 한 학생이 많이 힘들어 한다. 나도 피로가 누적된건지 쉬어가는 회수가 많아진다. 배낭은 비에 젖어 더 무겁게 느껴지고 어께는 빠질 것 같다. 장터목 도착 예정시간 한 30분정도 남은 거리 앞서간 학생들이 쉬고 있다. 나도 덩달아 쉰다. 5분정도 후에 또 다른 홀로 산객이 도착하여 쉰다. 수고하신다고 내가 먼저 인사를 건낸다. 고맙습니다 한다. 이 한 마디에 이 산객과 나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장터목대피소에는 예정시간 한 20여분 늦게 도착. 취사장에 들어가니 홀로산객이 자리를 잡고 나를 반긴다. 눈 인사후 잠시 쉬는데 홀로산객이 자리를 펴고 잠시 앉아 쉬시란다. 정말 고맙다. 홀로 산객이 물뜨러 간 사이 대기자들 접수하란다. 생각보다 산객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잠자리가 많이 남는다. 배정받은 자리를 확인한 후 다시 취사장에 가니 홀로산객이 와 있다. 방 배정 받으라 했더니 자기는 취사장 한쪽에서 비박할 거란다. 나도 비박하고픈 생각이 든다. 저녁후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5년전 이곳에서 1박한 생각이든다. 그때보단 많이 좋아졌단 느낌이든다. 비가 많이 내려 화장실 갈 걱정에 혹시나 하고 직원에게 물으니 내부로 연결되어 있어 한시름 놓았다.
오늘도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웬걸 오늘은 호텔에 온 느낌이다. 두세명의 코고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린다. 아주 편안한 하루밤이었다. 소등전 안내방송에 내일 일출시간을 알린다. 05시 30분쯤이란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일찍 기상하여 천왕봉 오르리라 마음먹고 꿈나라로 든다. 다음날 04 20분쯤 기상. 서둘러 천왕봉으로 향한다
젊은 친구와 함께 동행이 된다. 길이 어두워 헤메다 05시 30분쯤 드디어 지리산의 꼭데기. 더 이상 오늘 수 없는곳.  1915M 천왕봉 도착.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한국인의 기상을 한껏 들이 마신다. 일출보는 것을 이미 포기한 산객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난 5년전에 본 일출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역시 마음속으로 나마  일출을 본다. 
함께 올랐던 젊은 친구에게 사진 한 장 부탁하여 근거를 남긴다.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 한 장 더 찍잔다. 정말 고마운 젊은이다. 제석봉 고사목에서도 사진 한 장 더 찍고
대피소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하산 준비를 서두른다. 젊은 친구에게 전화번호 확인후 메일로 사진 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이제 지리산 종주의 마침표를 찍을 백무동을 향하여 하산.
08시경 예정시간을 3시간 이상 잡고 천천히 하산한다. 마지막 날, 계속 내리막 길이다 보니 무릎이 좋지 않다 간간히 산객이 올라온다. 04시경 출발했다고 한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산행이다. 내 아들이 생각난다. 원래 계획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동행할려고 하였으나, 내가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대신 아들과는 일주일전 피아골 대피소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언젠가는 아들과 종주를 꼭 한번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10시 50분경  예정보다 조금 일찍 드디어 백무동에 도착. 종주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내가 해냈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다. 이 기쁨을 맥주 한잔 하면서 자축해야지
버스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식당으로 가서 맥주 한잔하자.
식당에 가니 장터목 도착전에 만났던 홀로 산객이 역시 홀로 소주를 마시면서 나를 반긴다.
자기도 조금전에 도착 식당 샤워장에서 샤워후 한잔 하는 중이라고
합석하여 이런 저런 얘기 중 광주서 왔다고 반갑다고, 고향이 어디냐고 다시 고막원이라고. 나도 그렇다고 했더니 혹시 오씨가 아니냐고, 알고보니 같은 종친인데 내 사촌 동생과도 친분이 있고 집안 동생뻘 된다나. 반가운 기분에 출발을 뒤로 미룬채 과음을 하고 말았다
내가 구례 터미널에 차를 새워났으니 함께 가기로 하고 남원-구례 버스이용 이동후 내 차를 이용 광주로 향했다. 곡성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으면서 알고보니 이 홀로 산객이 내 고교 9년 후배가 된다나 어쩐다나 참 이런 인연도 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이번 지리산 홀로 종주를 마치게 되었다.
이번 종주를 시작하면서 가장 마음에 두었던 것은, 지리산 주능선 주변의 산천을 파악하고, 지리산의 기를 조금이나마 가슴에 품어보고 싶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주변을 조망할 기회가 없었던게, 종주는 하였으나 결국 반쪽 종주가 되지 않았나 싶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