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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연마한 땅의 보석, 임실

vincent7 2012. 6. 24. 17:49

 



속칭 ‘무진장’이라 일컬어지는 무주, 진안, 장수는 오지로 통했다. 쌀농사를 지을 만한 평지가 적고 산지가 많아서 타지와의 왕 래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리 달갑지 않은 별명이지만, 이 덕분에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진안과 장수 를 오른쪽에 두고, 전주와 남원을 위아래로 접하고 있는 임실은 도시와 시골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끼어 있는 지역이다. 치즈 외에는 특출하게 유명한 것이 없다.


진안에서 발원해 임실을 거쳐 지리산 산자락을 훑은 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형성하는 섬진강은 엄마와 누나를 졸라 강변에서 살고 싶을 만큼 예쁜 강이다.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씨는 임실에서 태어나 임실에서 30년 이 넘는 세월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고 있다. 그는 섬진강에서 일어나는 일상사를 소재로 주옥같은 시들을 써 내려갔다. “나의 모든 글은 거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을 믿으며, 내 시는 이 작은 마을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이기를 원한다”는 말처럼 섬진강은 그의 운문을 싹 트게 한 배경이자 뿌리이다. 소설가 박완서 씨 역시 섬진강 유역을 여행한 뒤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 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라고 기록했던 바 있다.


호수에서 피어난 짙은 안개로 이름난 옥정호는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 지다. 섬진강 댐이 세워지면서 조성된 인공 호수인 옥정호는 임실과 정읍을 잇는다.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 댐에 대해 ‘굽이치지 못 하는 슬픈 물굽이들이 / 얼마나 크게 힘쓰기에 / 물은 저렇게 흐를 길이 막혀도 썩지 않고 / 캄캄하도록 시퍼렇게 / 제 깊이를 만드 느냐’고 노래했지만, 40여 년 전에 완공된 댐에서 실향민의 애잔한 감상을 느끼는 이는 거의 없다.


주말이면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부터 옥정호로 향하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카메라 장비를 짊어진 사람들은 랜턴에 의지한 채 엄엄한 산길을 오른다. 옥정호의 비 경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국사봉에는 일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겨우 자리를 구할 수 있다. 차가 오가는 도로에는 안개가 없어도, 산정에서 굽어보면 멋진 농무가 끼는 날도 있다. 기온이 낮을수록 안개는 아래쪽으로 깔린다. 불그레한 빛깔이 세상을 밝히기 시작 하면 처음에는 산등성이의 윤곽과 뿌연 안개만 보인다. 그러다 태양이 솟아오르면 옥정호의 속살이 드러나고 안개가 바람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출사를 나온 행객들은 저마다 발아래 펼쳐진 운무를 품평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쁘다.


자주 옥정호에 온다는 토박이 한 사람은 “날씨가 푹해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런 대로 봐줄 만하다”고 했다. 뭉게구름처럼 몽실몽 실하지 않고, 얇은 층운 같은 안개는 산골짜기마다 엉겨 있었다. 평화롭고 한적하기 그지없는 정경이었다. 충주호에 비하면 옥정호 는 여성스럽고 아담하다. 옥정호 순환도로는 건설교통부가 지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힐 만큼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 인공적인 것이라곤 드문드문 보이는 매운탕과 오리, 빙어회를 판다는 음식점뿐이다. 옥정호에 떠 있는 붕어 섬에는 농가 3채 정도 가 있는데, 다가가는 것보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