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돌층계는 몇 계단일까요? | ||||||||||||||||||||||||||||||||||||||||||||||||
[오마이뉴스 이승철 기자] 정년퇴직으로 백수 동기가 된 친구와 함께 등산하는 목요일은 항상 기다려지는 날이다. 나이가 들수록 연인보다도 마음 통하는 친구가 소중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같은 시기에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비슷한 사회 환경과 여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그 친구와는 삶의 가치관도, 세상을 보는 시각도 비슷하여 대화가 잘 되고 정말 마음이 잘 통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우리들의 등산 날을 한 번 바꾸는 수밖에. 그래서 우리들은 화요일인 지난 13일 마니산 등산길에 나섰다. 일기예보는 서울과 중부지방에 상당히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였지만 아침에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어지간히 비가 내려도 예정된 날에는 어김없이 등산을 했었기에 우리들에게 조금씩 내리는 비 때문에 등산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 우리들이 마니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도 우산을 받쳐 들고 등산을 하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바람도 거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들은 계속 산 위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길가에는 두꺼비들이 많이 보인다. 어린이 주먹만큼 큰 것들도 있었다. 기도원이 있는 곳 수돗가에서 잠깐 쉬었다. 그러나 비는 여전하다. 도무지 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화장실 앞으로 하여 기도원 뒤쪽으로 오르는 길은 돌층계 길이었다. 돌층계를 보자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몇 년 전에 이 산을 오른 아내가 그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몇 번인가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마니산 등산을 할 때는 돌층계 오르내리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십여 개의 층계를 오르다가 뒤돌아서서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계속 오르면서 숫자를 헤아려 나갔다. 그러자 친구는 “그렇잖아도 힘 드는데 그걸 뭐하려고 헤아리느냐?”고 한다. 그래도 계속 헤아리며 올라갔다. 사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르면 힘든 줄을 모른다. 한 손에 우산까지 들었으니 훨씬 더 힘들 것 같지만 비 때문에 시원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으려고 우산을 이리저리 돌려받으며 신경을 쓰다 보니 힘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거기다가 돌층계 숫자까지 헤아리다보니 정말 힘든 줄도 모르고 정자가 두 개 나란히 서 있는 곳에 이르렀다. 비가 너무 쏟아져 쉬어가기로 하였다. 정자에 앉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다. 비와 구름으로 뒤덮인 산은 시계(視界)가 그야말로 몇 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앞의 안내판을 사진에 담아보아도 영 신통치가 않다.
잠시 쉬는 사이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위에서 내려온 일행 네 명이 점심을 나누어 먹는다, 우리들도 준비해간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잠시 쉬노라면 빗줄기가 약해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쉬었는데 쏟아지는 비는 우리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흠뻑 비에 젖은 모습들이다. 어쩌다가 우의를 갖춰 입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방수 옷으로 인한 더위 때문에 땀을 흘려 젖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산까지 들었으니 올라가라고 권한다. 여기까지 왔다가 비 때문에 그냥 내려갈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에 대한 생각들도 비슷한 모양이다. 그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빗속을 뚫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억수로 퍼붓는 빗줄기 속에 천둥 번개까지 요란하다. 손에 우산까지 들었으니 벼락 맞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전진을 계속하였다. 여전히 돌층계 수를 헤아리면서.
“이거 정상이 왜 이렇게 멀어? 아까 만난 사람들이 15분 정도면 오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우리가 지금 20분 정도는 올라온 것 아니야?” “비 때문에 우리 걸음이 느려서 그럴 거야. 조금 더 올라가면 되겠지 뭐. 돌층계 수, 1000을 헤아리면 될 것 같은데….” “그러지 뭐 별 수 있나,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고….” 그런데 비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얼마나 억수로 쏟아지는지 우산을 받쳐 들고 걸었지만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신발 속에도 물이 가득하여 발을 디딜 때마다 벌컥벌컥 물이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윗길, 돌층계를 한참 더 올라갔다. 능선길인데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눈앞의 길과 나무들 뿐이었다. 우산을 든 손도 빗물이 흐르고 있었고 보이는 것이 없으니 사진을 찍을 것도 없었지만 다행이 카메라와 핸드폰은 비닐로 감싸 놓아서 젖지 않을 것 같았다. 돌층계 수는 950을 헤아리고 있었다.
“어 저기 뭔가 보이는데….” 부지런히 올라가 보니 참성단 앞이었다. 돌층계 숫자는 1004를 헤아린 후 끝이었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참성단이군.” 그러나 참성단은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진 채 열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왼편으로 정상 표시가 되어 있는데 더 올라볼까?” “정상은 무슨, 참성단 봤으면 됐지. 자 내려가자고….” 친구는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곳까지 와서 사진 한 번 못 찍고 내려갈 수야 없지 않은가. 비닐 주머니에 들어있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비에 젖지는 않았지만 렌즈가 금방 흐려진다. 겨우 몇 번 셔터를 누른 후,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도 못해보고 서둘러 친구의 뒤를 좇았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천둥 번개도 우르르 꽝꽝 요란하였다.
정자에 앉아 잠깐 쉬기로 하였다. 친구가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묻는다. “돌층계수가 몇이라고 했지?” “어, 1004층계야.” “천 네 개라고? 천이면 천이지 네 개는 또 뭐야?” “그런가? 그런데 1004개 천사, 어때 근사하지 않아? 마니산의 정상은 1004개 돌층계. 천사였다.” “어?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멋있고 기막힌 계단인 걸. 천사의 계단.” 다시 마리산 기도원을 지나 내려오는 골짜기는 그동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 멋진 물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폭포가 되기도 하고, 바위 위를 미끄러지며 흘러내리는 물도 장관이었다. 물이 막혀 고인 곳은 누런 황톳물이었지만 역시 멋진 모습이다.
“저 사람들이 미쳤다고? 미친 건 우리들이야, 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이 모습을 보라고 황톳물…” “어, 정말 그러네. 그럼 우리가 천사(1004)에 미친 사람들이잖아 황톳물.” 뜻하지 않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오른 마니산. 등산객들이 그렇게 싫어하는1004개의 돌층계, 그러나 친구와 함께 비에 흠뻑 젖으며 오른 마니산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이승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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