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주머니속의 애송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 원 태연

vincent7 2012. 5. 30. 09:27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 원 태연 -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언젠가 부터 저는 행복이 TV드라마나
CF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제 눈동자에서도 행복이 보인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좋은 일들만 생길 수가 있는지.
그렇게 늦게 오던 버스도 어느새 내 앞에 와
어서 집에 가 전화를 기다리라는 듯 나를 기다려주고
함께 보고 느끼라는 듯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읽어보고 따라 하라는 듯
좋은 소설이나 시집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그의 생일이 찾아옵니다.
그의 생일날 무슨 선물을 건네줄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참 이뻐보입니다.
언제나 나를 떠올릴 수 있게
메모와 지갑을 겸할 수 있는
다이어리 수첩을 사줘볼까?
하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행복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때
문득문득 불안해지고는 합니다.
사랑하면 안 되는데,
또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버스가 너무 빨리 와 어쩔 수 없이 일찍 들어간 집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
전화기만 만지작만지작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되는데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게 되면 안 되는데
읽을만한 거라고는 선물 받았던 책
밤새도록 뒤적이며 울고 또 울게 되면 안 되는데

입을 맞추고 싶다가도
손만 잡고 말아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 선물 하나 고르는데 몇 날을 고민하는 이번에
또 잘못되더라도 기억 속에 안 남을
선물을 고르려 노력하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또 그렇게 되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