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주머니속의 애송시

귀뚜라미 / 나희덕

vincent7 2011. 9. 16. 12:35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풒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러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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