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할리데이를 들었다. 그 나름으로 감동도 하였다. 하지만 빌리 할리데이가 얼마다 멋진 가수인가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 중에서>
하루키는 젊었을 때에는 젊고 싱그러운 목소리, 세상을 흔든 자유로운 음악을 좋아했지만 40대를 넘기면서 마약에 망가진, 어쩌면 퇴락한 목소리의 음반을 더 찾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감정이 어쩌면 ‘용서’가 아닐까 하고 규정합니다.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라는….
어쩐지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고이는 가수, 커다란 치자꽃을 머리에 단 재즈의 여왕 빌리 할리데이가 1915년 오늘(4월 7일) 미국 볼티모어의 슬럼에서 13세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972년 다이아나 로스가 열연한, 빌리의 삶을 그린 영화의 제목 ‘Lady Sings the Blues’는 빌리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Blues는 음악 장르이기도 하지만 ‘우울’을 뜻하기도 하지요. 빌리에게서 삶은 Blues였고 ‘생즉고(生卽苦)’ 자체였습니다. 10세 때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당하고 신고했다가 오히려 감옥에 갇혀 2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전축이 있는 창녀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흑인남성에게 성폭행 당하고, 자포자기해 몸을 팔며 지내기도 합니다.
그녀가 가수가 된 사연은 한편의 영화 같습니다. 밀린 방세를 못내 쫓겨나기 직전 주린 배를 움켜잡고 무작정 거리를 헤매다가 재즈홀의 간판을 보고 들어갑니다. 댄서라고 속이고 취직하려 했지만 그저 일자리를 주기는 만무하지요. 오디션을 거쳐야 했고 당연히 들통이 났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취업시켜달라고 하소연하자 피아니스트가 “노래라도 한 곡 불러보렴”하고 기회를 줍니다. 그녀가 ‘혼자서 여행을(Travelin' All Alone)’이란 노래를 부르자 홀 전체가 얼어붙은 듯했다고 합니다. 가수가 탄생했고, 재즈가 재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빌리는 백인밴드와 노래를 불렀지만 무대 밖에서는 버러지 취급을 받았습니다. 순회공연 도중 식당에서 혼자 쫓겨나가는 것은 비일비재했고, 호텔에서 문전박대를 당해 혼자 잘 곳을 찾아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결혼생활에도 번번히 실패해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첫 번째 남편이 심어준 마약중독자란 딱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마약을 이기기 위해 요양원을 찾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됐고 말년에는 마약을 이기기 위해 술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녀가 간경변증과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경찰에 의해 마약 소지 심증만으로 체포됐습니다. 그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마약 욕구를 줄이는 진정제만을 주사 받다가 숨졌을 때 병원의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차트에는 엘리노어 페이건이라는 본명 밑에 “병명: 마약중독 말기, 치료방법: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1959년 7월 그녀는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쓸쓸히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의 우울한 음악이 너무나 아름답고 편안하니 저도 용서를 아는 나이가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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