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
-나희덕 (1966~ )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이 비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글의 향기 > 주머니속의 애송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단풍 (0) | 2010.09.29 |
---|---|
접시꽃 당신 / 도종환 (0) | 2010.08.10 |
그대가 곁에 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0) | 2010.08.10 |
오늘밤 저렇게 별이 빛나는 이유 / 안도현 (0) | 2010.08.10 |
그리운 날엔 그대에게 가리라 (0) | 201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