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소리에 땀 씻고 검푸른 소에 등 오싹
삼척 도계읍 고사리에서 남동쪽 두리봉·육백산 사이로 6~7㎞ 뻗어올라 간 성황골. 인적 뜸하고 오염원도 거의 없는, 보기 드문 산골짜기다. 상·하류에 걸쳐 볼만한 바위경치를 두루 거느렸으면서도 일반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지전문 산꾼이나 이끼에 반한 사진꾼만 간혹 찾아들 뿐이다. 중·상류쪽엔 길이 없어, 밧줄·계곡신발 등을 갖추고 본격 계곡 트레킹을 해야 하는 곳이다. 다리품을 좀 팔아야 하지만, 최상류와 중·하류를 따로 둘러보는 게 안전하다.
오지전문 산꾼만 간혼 발길
고사리 38국도변에서 현불사 쪽으로 3.5㎞. 가파르고 비좁은 시멘트길이 끝나는, 무건리2반(작은무건이) 달래촌(월래촌)의 마지막 민가 아래쪽에 차를 대고 널찍한 산길을 걸어오른다. 낙엽송 숲 맑은 바람과 진한 더덕 향이 몸을 감싸는 숲길이다. 큰말(큰무건이) 사람들이 “춤 뱉고, 돌 던져올리며” 오가던, 성황나무 옆 산굽이를 돌면서 국시재 오르막은 완만해진다. 오른쪽으로 짙푸른 빛에 감싸인 첩첩 산줄기들이 달려가고 쏴아,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뜬구름도 달려간다. 성황골 물줄기가 흘러가는 쪽이다.
참나무·소나무들이 우거진 산길을 몇 차례 오르내리면 왼쪽 산비탈에 들어앉은 민가들이 나타난다. 큰말이다. 5~6집이 있으나 모두 비어 있다. 주민들은 삼척·태백 등에 내려와 살면서, 여름철 작물 가꿀 때나 드나든다고 한다. 소달초등교 분교까지 있던 마을이다. 주민이 줄면서 학교는 문을 닫고, 큰물에 쓸려 학교 터는 폐허가 됐다. 돌무더기에 묻힌 그네틀과 미끄럼틀이 안쓰럽고, 분교 터임을 알리는 팻말의 ‘무건분교장, 설립 66년, 폐교 94년, 22회간 졸업생수 89명’ 내용이 무상하다. 1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이곳, 목적지인 용소 쪽으로 가려면 분교 터 팻말 아래, 가래나무 밑 오솔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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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황골 하류의 작은 용소. 산터(산기) 마을에서 오솔길을 따라 올라 처음 만나는 물길 아래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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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숲으로 들어가 잡초 무성한 비탈길(절벽 조심)을 헤집고 내려가면 거센 물소리가 먼저 귀를 때리고 이어 푸른빛 도는 소와 폭포(높이 7~8m)가 나타난다. 폭포 물줄기는 주로 바위 오른쪽을 타고 흘러내린다. 소 오른쪽 산비탈엔 또 다른 폭포(10여m)가 이끼 무성한 바위들에 걸려 있다. 이 경치가 그동안 흘린 땀을 씻어주기에 충분하지만, 감동할 정도엔 못미친다. 진짜 경치는 소에 걸린 폭포 위쪽에 숨어 있다.
폭포 왼쪽 바위벽에 늘어진 고정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폭포 위로 올라서면,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길인 듯 어둑한 바위절벽 사이로 물줄기가 이어진다. 왼쪽 비탈을 돌아내려가 물길 건너 바위자락을 타면, 높이 10여m의 아름다운 이끼폭포가 전모를 드러낸다. 그 화사한 폭포를 향해 다가가는 순간, 섬뜩한 냉기가 온몸에 엄습해 온다. 그 기운은 폭포 왼쪽에 쩍 벌린 검은 입과 시퍼런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맹렬한 기세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움푹 파인 검은 절벽의 물구멍과 그 물이 고여 이룬 소름끼치게 푸른 소가 그 입들이다. “혼자서는 되도록 가지 말라”던 태백에 사는 노련한 오지전문 산꾼 김부래(64)씨가 떠오른다. 오직 쏟아지는 폭포소리 속에서, 영혼까지 빨아들일 듯 아가리를 벌린 심연과 마주해야 하는 곳이다. 밝은 빛에 감싸여 여러 층을 이룬 오른쪽 이끼폭포가 낮 세상이라면, 왼쪽 컴컴한 바위구멍과 싸늘하도록 푸른 소는 밤 세상이라 할 만하다. 폭은 3m쯤이지만 깊이가 10m는 족히 돼보이는 그 시퍼런 소가 바로 용소다.
일부 산꾼들은 왼쪽 절벽의 파인 곳을 용소굴로 알고 있으나, 진짜는 이끼폭포 위쪽에 있다. 몰지각한 이들이 석순·종유석 등을 잘라가는 통에 철문을 해달았다는 용소굴을 보기 위해 폭포 위로 오르는 길을 찾았으나, 이끼로 덮인 벼랑엔 발 디딜 곳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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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황골 최상류 큰말(큰무건이) 골짜기에 숨은 이끼폭포와 용소(왼쪽 아래). 움푹 팬 절벽동굴에서 물줄기가 쏟아져나와 용소로 흘러든다. 이끼폭포 위쪽엔 납닥소와 석회동굴 용소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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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촌에 사는 전동섭(71) 무건리 이장은 “용소굴은 분교장을 지을 때 굴 바닥의 모래를 퍼내 자재로 썼을 정도로 큰 굴”이라며 “철문의 자물통이 뜯겨져 시청에서 최근 다시 해달았다”고 말했다. 용소굴 앞엔 굴에서 쏟아져나온 물이 고여 이룬 납닥소가 있는데, 약 40년 전에 납닥소의 밑바닥이 꺼지면서 빠진 물길이 바로 지금 폭포 왼쪽 절벽 한가운데서 쏟아져나오는 물이라고 한다. 그 전까진 납닥소의 물이 곧바로 용소로 떨어져내렸다. 전씨 말로는, 용소굴을 가려면 큰말에서 임도를 따라 더 들어가 도라지밭 옆으로 내려선 뒤 묘지를 지나 절벽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성황골 상류엔 산길이 없고, 폭포와 소가 번갈아 이어지는 가파르고 험한 물줄기여서 전문장비 없인 내려갈 수 없다. 약한 석회암 지형이어서 바위가 부서지기 쉽다는 점도 위험요소다.
마른 내 적시는 용천수
성황골 중·하류 답사는 산터(산기) 마을에서 시작한다. 산기3교 지나 양옥집 옆길로 들어 골짜기를 오른쪽에 두고 좁은 오솔길을 올라 잠시 걸으면 물줄기로 내려서게 된다. 여기서 상류쪽은 평탄한 물길이 이어지는 반면, 오른쪽 하류엔 멋진 바위자락과 폭포, 깊은 소가 어우러진 경관이 숨어 있다.
얼핏 그냥 지나치기 쉬우나, 거센 물소리가 나그네의 발길을 잡아 끄는 곳이다. 코끼리처럼 생긴 바위를 보고 물길 건너면 곧바로 아담한 폭포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로 깊은 소와 둥글게 깎인 바위절벽을 굽이치며 흘러내려가는 물줄기가 펼쳐진다. 위·아래 완만한 물줄기와는 전혀 다른 경관이다. 세찬 폭포 줄기가 만들어내는 물거품과 검푸른 물빛이 뒤섞여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 소는, 최상류의 용소와 짝을 이뤄 ‘작은 용소’로 불린다. 주민들 말로는 “이 소가 다 메워진다면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깊던 소였다. 몇 년 전 몰아친 태풍 루사·매미가 상당부분을 메웠다고 한다. 이 경치를 즐기던 옛 사람 몇이 제 이름을 소와 물줄기가 이어진 중간 바위자락에 새겨놨지만, 세월과 물살에 쓸려 거의 닳아가고 있다.
상류로 완만한 물길을 따라 한동안 오르면, 푸른 물웅덩이가 보이고 오른쪽 산밑 이끼바위 틈에서 쏟아져나오는 거센 물줄기들을 만난다. 석회암 지형이어서 계곡 중간에 땅밑으로 스며들었던 물줄기가, 이곳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이다. “일교차가 큰 날, 물과 함께 솟아나오는 자욱한 물안개가 장관”이라지만, 그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여기서부터 마른 하천이 300여m 이어진 뒤 다시 물길이 나타나는데, 이런 되풀이는 중상류까지 너덧 차례 계속된다. 마른 계곡의 바위자락엔 커다란 폭포 자국 따위가 또렷이 새겨져 있어 희한한 느낌을 준다. 이 마른 계곡을 채우는 건 쏴아 물소리를 내는 바람과 쩡쩡 골을 울리는 새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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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황골에서 만난 뚜구리(둑중개) 낚시꾼 전욱영(40)씨. 본디 줄을 짧게 매고 낚싯대 끝부분까지 물에 담그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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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건천이 끝나는 곳 오른쪽 미루나무 언덕 위엔 다 무너져내린 굴피집이 한 채 있고, 그 맞은편 물길 옆엔 깊이는 없이 커다랗게 입만 벌린 이름없는 동굴이 있다. 성황골엔 최상류의 용소굴말고도 여러 개의 석회동굴이 흩어져 있다. 70년대까지 네 집이 살았다는 계곡 중류 오른쪽 산자락엔 큰개울굴이 있고, 앞서 국시재 넘어 큰말로 가는 길 오른쪽 비탈 마을(땡비알·땍비알·된비알) 외딴 민가 옆엔 무건이굴이 있다. 모두 삼척시 에서 보호하는 동굴로, 철문과 잠금장치를 해놓았다.
적막한 이 골짜기에 가끔씩 발소리를 내는 이들은 ‘뚜구리’(둑중개) 낚시꾼이다. 무당개구리 올챙이만 노니는, 버들치 하나 안 보이는 물웅덩이에서, 주민 낚시꾼들은 담갔다 하면 한 마리씩 씨알 굵은 ‘뚜구리’를 낚아낸다. 도계읍 흥전리에 산다는 낚시꾼 김진화(70)씨는 “이 골짝은 물이 차 다른 고기는 살지 못한다”면서 “뚜구리말곤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둑중개는 여름에도 수온이 20도를 안 넘는 1급수에만 사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다.
삼척/글·사진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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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 성황골 여행정보=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 우회전~중앙고속도로~제천나들목~38번 국도 영월 방향~영월~태백~도계. 또는 영동고속도로~강릉~동해고속도로~동해에서 38번 국도 우회전~도계. 태백에서 갈 경우 도계읍 지나 38번 국도변 고사리(하고사리역 , 소달초·중교 부근)에서 고사리 팻말 보고 우회전(고사리·월명사 팻말이 언덕 내리막에서 갑자기 나타나므로 조심), 고사취수장 앞 다리 건너 직진, 산터(산기) 마을 지나 석회암 채굴장 거쳐 오르면 시멘트길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월명사, 오른쪽은 국시재로 가는 길이다. 가파른 오른쪽 길로 500m쯤 오르면 마지막 민가가 왼쪽에 보이고 못 미쳐 차 서너대 댈 공간이 있다. 여기서 한굽이 걸어 오르면 시멘트길 끝나고(5월 말까지 오르막 300m 추가 포장공사 진행 중) 흙길이 시작된다. 전나무숲길 지나 오르면 오른쪽에 성황목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길이 큰말까지 이어진다. 출발지~국시재~큰말 1시간 남짓. 주민이 상주하는 마지막 집은 시멘트길 삼거리 오른쪽의 전동섭 무건리 이장 집이다. 오르막길에 차단기가 설치됐을 경우 전 이장과 상의하면 열쇠를 내준다. 휴대폰은 이 골짜기에서 터지지 않는다. 식수는 이장집에서 준비해가는 게 좋은데, 큰말 주거지 밑 길 왼편에 시멘트 구조물의 문을 열면 우물물이 고여 있고 바가지가 걸려 있다. 큰말에서 용소 쪽으로 내려갈 때 소나무숲 지나 가파른 내리막 끝은 급한 비탈이다. 왼쪽 수풀로 오르막 길이 있고 밧줄이 늘어뜨려져 있는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폭포가 나온다. 석회암 지대이므로 낙석 등에도 주의해야 한다. 전동섭 이장 (033)541-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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