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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정기 품은 단양 여행

vincent7 2010. 4. 3. 08:11

청명한 정기를 머금고 포근한 마음을 선물한다 ‘단양’

 


▲ 기차로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기차역을 지날때면 잠시 차를 주차하고픈 유혹에 사로잡힌다.
시원하고 산뜻한 소백산 자락을 길동무 삼아 굽이진 도로를 드라이브하니, 이내 시야는 물론 가슴까지 확 뚫려버린다. 갑갑한 일상은 더는 오늘이 아니고 지나간 과거로 치부되어 버릴 만큼, 내 몸 안의 근심을 모두 태워 없애주는 단양으로 떠난 여정 길. 이곳의 산과 강, 나무와 바람 그리고 풍요로운 들판의 따사한 기운이 실바람이 귓가에 살랑이듯 속삭여주며, 지쳐버린 심신에 포근한 마음을 선물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농촌의 한적한 마을의 풍경이 한동안 시야를 뒤덮더니, 어느새 넓은 들판 대신 힘찬 산자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저마다 푸르고 밝은 정기를 머금은 산과 산이 서로 이웃인 양 나란히 맞대어 있는 풍경 속에 길이 갓 시집온 색시처럼 수줍게 이어져 있다. 단양에 도착한 것이다. 단양에서 제일 먼저 이방인을 맞이한 것은 바로 소백산의 맑은 기운이 서려 있는 수려한 산과 부드럽고 우아한 길이었다. 그리고 거칠어진 피부와 가슴을 보드랍게 감싸 안는 맑은 공기. 잠시 도로를 벗어나 주차를 하고 창문을 여니,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리고 깨끗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복잡한 머리와 가슴에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씻어내 주는 단비가 내리고, 차 안에서의 지루함은 봄눈 사르르 녹아내리듯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 첩첩 산중에 자리잡았기에, 단양은 초봄에도 겨울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왼쪽) - 곡선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S자형 길이 있어, 여행은 더욱 숨가쁘다(가운데) - 산이 유난히도 많기에 터널 역시 많이 통과해야 도달하게 되는 단양
길은 고요하게 마을을 굽어보고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調陽)이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연단은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고 조양은 빛이 골고루 비친다는 뜻을 의미한다. 얼마나 살기 좋으면 신선이 다스리는 빛이 좋은 고장이라는 지명을 얻었을까.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간단하다. 바로 단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이곳이 왜 살기 좋은 고장인지 확인하면 된다. 물론 단양의 높은 산에 오르면 시내와 마을을 굽어 내려다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역동적으로 단양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59번 도로를 타고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가슴에 새기는 방법이다. 국도를 벗어나 단양에 들어가는 초입에 들어설 때 바꿔 타는 59번 도로. 처음에는 평탄하게 길이 이어지나 단양의 중심으로 들어서면 높은 산자락을 따라 하늘을 향해 뻗어가듯 길이 높게 들어서 있다. 바로 이곳이 단양을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다. 굽이지고 경사가 높아 운전을 하는 데는 조심성이 요구되지만 천천히 드라이브를 하면서 산 아래의 밭과 촌락 그리고 강과 산을 바라보면, ‘이것이 드라이브의 백미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만 주차를 하기에는 위험하므로 사진을 찍는 대신 가슴 속으로만 그 풍경을 깊이 새겨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이곳에서 바라본 지상의 풍경은 평생 간직하고 싶을 만큼 환상적인 추억을 선사해준다.

▲ 도도한 강을 벗삼아 산은 힘차게 기지개를 편다.
또 다른 멋을 가진 길이 펼쳐진다

단양의 평탄하고 온화한 길이 59번 도로라면, 곡선의 길이 줄지어 이어진 또 다른 이색적인 길은 595번 도로일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진 부드럽고 우아한 S자형 도로가 단조롭게 이어진 직선 도로에 지루해진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하는데, 곡선이 반복되어 펼쳐진 이 도로는 굽어지는 각도가 구간마다 달라 도무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는 곳이다. 어떤 구간은 길이 많이 휘어져 있고 어떤 구간은 오밀조밀하게 곡선을 이루고 있어 도로를 주행하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집중되는 595번 도로는 59번 도로와는 다른 색다른 맛을 낸다. 물론 단순히 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역시 수려한 자연이 늘 함께하는데, 길과 나란히 경계를 맞대듯 흐르는 작은 시냇물의 호쾌한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드라이브는 청량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어릴 적 동화나 만화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전설이 깃든 온달산성. 소박한 공원처럼 조성된 입구와는 달리 사랑의 전설 때문인지,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 소리 때문인지, 산성으로 가는 길목은 아련하게 고즈넉하다. 온달산성에서 평강과 온달의 지고 지순한 사랑의 온기를 느끼고 다시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시작하다 보면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에 도착한다. 절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구인사의 첫 이미지는 단양을 지키는 장군처럼 웅장하고 장엄했다. 산의 골짜기에 세워진 사찰의 일상은 마치 고요한 아침 햇살 같이 청아한 기운을 머금고 자비롭게 속세를 굽어보고 있다. 구인사의 조사전은 사찰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까지 올라가는 길은 동네 약수터에 오르는 것만큼 약간의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는 고요한 사찰의 풍경이 함께하기에,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내디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고요한 강 위에 작은 섬이 유유히 떠 있는 것만 같은 도담삼봉
자연의 신비로운 초대

단양을 떠나고 들어설 때 시선을 빼앗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도담삼봉이다. 단얀 팔경 중 하나인 이곳은 말 그대로 세 개의 작은 봉이 남한강 위에 작은 산봉우리처럼 유유히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 보면 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뜻 보면 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봉 위에는 작은 누각이 세워져 있어 신비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만약 신선이 있다면 꼭 이곳에 들러 차 한잔을 마시며 장기라도 한판 두고 있을 법한 풍경. 운치 있고 낭만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단양에는 태곳적 자연의 미를 가진 다양한 천연동굴이 있다. 고수동굴, 온달동굴, 노동동굴, 천동동굴 등 감히 인간이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동굴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동굴 안에는 석회석이 만든 종유석과 석순 등이 세상의 만물을 형성하며 나지막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펼쳐지는 태곳적 자연의 모습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장엄한 분위기는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동굴 안에는 적막함이 흐른다. 작은 소리조차도 메아리 울리듯이 더욱 크게 돌아오니,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단양의 사계는 저마다 색다른 옷을 입고 있어, 찾는 시기에 따라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봄에는 새벽 이슬처럼 영롱하고, 여름에는 푸른빛에 마음을 빼앗기고, 겨울에는 시리고 투명한 설산과 강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사시사철 이방인의 가슴에 짙은 산수화를 그려 넣어주는 단양. 그곳의 길, 산, 강, 바람, 나무 그리고 사람이 그립다.

▲ 세 마리의 코끼리가 탑을 등에 지고 있는 이색적인 구인사의 탑(왼쪽) - 험중한 산속에서 청아하고 장엄한 기운을 내뿜는 사찰은 깨끗한 마음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