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천경자 * 오후 / 유안진 천천히 담담하게 조용히 객쩍고 미안하게 …… 이런 말들과 더 어울리는 오후(午後) 그래서 오후가 더 길다 그런 오후를 살고 있다 나는 지는 해가 더 처절하고 더 장엄하고 더 할말 많고 더 고독하지만 그래서 동치미 국물보다 깊고 깊은 맛이여 그런 오후를 살고 싶다 나는. ![]()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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