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은 새로운 나다.
개울물이 항상 그곳에서 그렇게 흐르고 있어
여느 때와 같은 물이면서도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듯이
우리들 자신의 '있음'도 그와 같다.
그러니 흐르는 물처럼 늘 새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고 했다.
물의 덕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을 도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행복은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꽃향기처럼 들려오는 것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멀리 밖으로 찾아 나설 것 없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끼면서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철이 바뀔 때마다 꽃과 잎과 열매를,
바람이 숲을 스치고 지나가듯이
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어느새 꽃이 피고 잎이 펼쳐지고
열매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안과 밖이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되면
모든 현상은 곧 우리 내면의 그림자다.
며칠 전에 항아리에
들꽃을 꽂아 보았더니 항아리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텅 빈 항아리와 아무것도 올려 있지 않는
빈 과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텅 비게 된다.
무념무상 (無念無想),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眞空妙有) 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
글 :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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