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찻잔 속의 글

가수 박인희님과 이해인 수녀님의 이야기

vincent7 2015. 6. 11. 09:20

 

가수 박인희님과 이해인 수녀님의 이야기

 

 

이규민 이해인 조혜리 박인희(여중)
 
 

풍문 여중 2학년 시절의 옛 사진(아마 4명 중 한 명의 생일에 사진을 찍으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 게 아닌가 싶네요)

왼쪽부터 이규민은 우리 반 지휘자였고 지금은 미국에 사는 열심한 친구!
조혜리는 공부를 아주 잘 한 소녀(지금은 서울에 살고.....만나기가 어렵지만 언젠가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음)

이명숙(해인)양은...약간 내숭형의 문학소녀라고나 할까.....남녀포함 친구들이 제법 많았답니다.호호호...

끝으로 '하얀 조가비'를 부른 가수 박인희(춘호)는 우리반 반주자로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소녀였기에 

후에 연극도 하고 가수가 되었다고 하여 우리 모두 놀랐답니다.

요즘은 노래를 안 부르지만아직도 가수 박인희를 좋아하는 분에게

보내려고 찾은 사진 재미도 있기에 여기 두고가니 감상하세요!

 

 

 

1970년대 '뚜와 에 무와"라는 그룹으로 몇 달 활동하다가 싱어 송 라이터로 우뚝 섰던 가수 박인희씨, 그러나 그녀는 앵무새처럼 같은 노래를 부르고 부르는 게 싫어서 가수활동을 포기하고,가끔 작곡과 작시를 겸비하여 주로 방송활동만 했다.
그리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모닥불을 작곡하여 불러주었고,
여고시절엔 문예반과 신문반장으로 활동하고 연극도 했으며 최초의 숙명여대 방송국장을 지내며 교내방송을 지휘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그녀와 수녀 시인 이해인은 누구보다 절친한 우정을 나누었다.
중 3 이후 헤어진 그들은 하루하루 모습이 변해가던 성장기를 꾸준한 편지로 만남을 대신했고, 성인이 되어 자신의 갈 길을 잡은 뒤에도 개신교와 천주교의 엇갈린 교파에도 불구하고 수녀원과 집을 오가며 진한 우정을 나누었다. 가수이자 방송인과 수녀이며 시인으로써 자신의 길에서 각자 우뚝 선 그들의 우정 이야기를 또 제가 잘가는 사이트에서 퍼와서 소개 합니다.

이 얘기들은 박인희씨의 자전수필집 <우리 둘이는>(1987, 청맥사 간)을 참고로 했다고 합니다.


묵은 편지함을 열어보니 오롯이 정이 배인 숨결들이 옛 모습 그대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어린 시절, 중학교에 갓 입학한 두 철부지의 영혼을 신(神)은 깊은 만남으로 맺어주셨다.
강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혼과 영혼의 눈길, 단 한 번 마주친 눈길에서 철없이 같은 반이 되길 소망했고, 신은 우리의 작은 소망을 이루어 주셨다. 중 일학년, 같은 반이지만 서너 자리 건너쯤 떨어져 앉았던 우리 두 사람.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나에게로 편지 한 통이 날아와 있었다. 학교에서 주고받는 낙서 쪽지 외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뒤 처음 받아 본 꽃편지, 봉투에 붙여진 우표를 가슴 설레이며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교에서 만나면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우린 말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단지 서로 잠시 미소만 지을 뿐......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어린 편지 한 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 우린 일기를 쓰듯이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어쩌다 편지를 못받은 날은 우울한 저녁이 되어 버릴 만큼 우린 서로의 글을 간절히 기다리곤 했었다.
그러나 해인이는 중 3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고...그럼에도 우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로의 글을 주고 받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우리는 몇 년간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지금의 환이 아빠와 함께 명동의 어느 골목을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수녀 한 사람.
소식은 알 수 없어도 수녀가 되리라고 이미 예상은 했었던 친구였지만 골목에서 불현듯 마주친, 수녀가 된 옛 친구의 모습앞에 난 막막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마주친 그리운 모습... 그러나 우린 서너 마디인가를 서로 어색하게 안부를 묻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아마 그때의 해인이는 어쩌면 청원 수녀 기간(수녀가 되기 위한 학습, 교육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 사람의 완전한 수녀가 되는 길이 얼마나 멀고 아득한 세월이 흘러야 하는 지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청원기간을 거친 후 종신 서원(하느님 앞에 수녀로써 평생 귀의하겠다는 선서를 하는 정식 수녀의 의식)을 할 때까지의 견딤의 세월,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 낸 해인이로부터 종신서원을 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해인이의 종신서원날 간곡히 보고싶다는 그녀의 애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녀원에 가지 않았다. 철없이, 그저 영 이별인줄만 알고...친구의 길을 멀리 떨어져서, 서울에서 묵묵히 축하해 줄 수밖에 없었다.
환이 아빠와 결혼을 한 뒤, 신혼의 어느 날 해인이는 갈현동의 나의 보금자리로 찾아왔다.
"우리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는데 참 좋더라...<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하는 노래인데 아주 곱고 좋더라". 나는 멍하니 해인이를 바라보았다.
"너 혹시 그 노래 아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수녀님이나 신부님의 노래 소리도 참 좋지만 언젠가 비디오에서 노래를 원래 부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어. 티없이 깨끗한 목소리더라."

가슴이 뜨끔했다.
"가냘프면서도 여운이 담긴 목소리야, 네 목소리처럼, 네가 한 번 그 노래를 불러보면 참 잘 어울릴 텐데...너두 노래를 좋아했을 텐데......신부님이 가만가만 기타를 치시면서그 노래를 부르실 때 네 생각을 해봤어.
"그 노래를 처음 부른 사람이 누구인 줄 아니?"
"누구라더라...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구인지 자세히 모르겠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넌 알고 있니?"
해인이의 반문에 오히려 나는 아무 말을 못했다. 우리는 거저 멍하니 서로 바라보았다.
잠시후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장의 레코더, 그 노래 '모닥불'이 담겨진 표지의 사진을 해인이의 앞으로 조용히 내밀었다,

"그야말로 바닷가의 데이트구나."
해풍 속에 해인이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광안리 바닷가를 둘이 걸었다. 겨울바다라기보다 봄바다 같다. 조가비, 고동, 작은 돌들을 주우며 앞서 걷던 해인이가 별안간 생각난 듯이 말했다.
"너랑 어디 잠깐 들를 데가 있어, '사랑의 고리'라고...거길 가면 벨라뎃다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는데 5 년 전인가, '무명옷 갈아입고...' 그 노래를 곱게 부르더라. 오늘 한번 다시 듣고 싶은데 거길 같이 가자" 모랫벌을 걷다가 모래가루를 털 겨를도 없이 우리는 둑 위로 뛰어올라 왔다.

수퍼마킷에서 먹을 것을 좀 사 가지고 수녀원 입구 가까이까지 올라왔다.
"벨라뎃다-"
해인이가 부르니 기쁨이 넘쳐흐르는 한 얼굴이 창 밖으로 내다보며 반겨준다.
자그마한 방. 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인이와 나, 벨라뎃다, 그리고 이름 모를 두 사람, 모두 다섯이 둘러앉았다. 앉기가 바쁘게 해인이가 말했다.
"벨라뎃다! 나, 사실은 청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
"수녀님이 원하시는 거라면 들어 드려야지요. 뭔데요? 제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할 수 있는 거지. 저어, 불쑥 청을 해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무명옷 갈아입고...' 그렇게 부르는 노래 있지?
'들길' 이란 노래, 그 노래 한 번 불러 줄래? 왜 5 년 전인가 벨라뎃다가 나에게 들려 줬었지. 오늘 갑자기 그 노래가 듣고 싶어서 그래"
"...할 수는 있지만... 갑자기라서 막힐 것 같아요, 도중에"
"막혀도 괜찮아. 부르다가 잊어버리면... 아니야, 막히지 않을 거야.. 그 노래 좀 불러 봐"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노래는...?"
"글쎄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래. 이유는 노래 끝난 다음에 하기로 하고"
"근데, 이 분은 (나를 바라보며) 어디서 많이 뵌 것 같아요. 잘 아는 분 같아요."
"어디서 본 사람 같애?"
"네,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아요. 박..인희씨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아침 미사 때 성당에서 제 바로 뒤에 계신 것을 뵙고 깜짝 놀라 미사 도중에 여쭤 보려다가 참았어요. 맞아요? 박인희씨죠?"
"비슷해요? 그 사람하고?"내가 웃으며 물었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예요. 맞지요? 박인희씨!"
"그 사람하고 많이 닮았나 봐요"
내가 말했다.
"어머! 너무 닮았어요. 저는 아까 아침에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놀라서 박인희씨가 어떻게 이곳을 오셨나 했어요."
"그 사람하고 많이 비슷한가 보구나" 해인이가 거들었다.
"그건 그렇고, 자! 어서 그 '들길'을 불러 봐, 노래 다 부른 후에 이유를 설명해 줄께!"
벨라뎃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보자
내 눈에 먼지들이 씻어지리니

무명옷 갈아입고
들길을 가자
내 발에 고운 흙이 밟혀지리니

한때는 미워했던 사람들마저
겨레의 이름으로 생각하면서

무명옷 갈아입고
들길을 가자
내 발에 고운 흙이 밟혀지리니

아! 노래가 끝났을 때의 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우리는 이 노래를 '병아리의 노래'라고 불러요.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보자'로 시작돼서요"
벨라뎃다가 설명했다.
상위에 놓인 노트를 무심코 들춰보니, <방랑자> <스카브로우의 추억> <모닥불> <그리운 사람끼리> <하얀 조가비> < 장미꽃 필 때면> 등 나의 노래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찬송을 부르고 ..그리고 그들은 나의 노래를 그토록 좋아하며 불렀다고 한다.
벨라뎃다!
이 이름 -, 해인이의 어릴 때 본명이 벨라뎃다가 아니었던가. 클라우디아라는 이름 이전, 이 길들여진 이름 앞에 나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을 퍼부었던가? 어린 마음을 다해, 순결의 시간을 다 바쳐 이 이름 앞에 편지를 쓰곤 했다.
두 사람 -, 클라우디아가 된 발라뎃다와 노래를 들려 준 작은 벨라뎃다를 앞에 두고 나는 다만 먹먹할 뿐이었다.
기도 시간이 다 되어 허겁지겁 일어나는 우리에게 작은 벨라뎃다가 노트와 펜을 주며 말했다.
"여기에 사인 하나 해주세요."
'12월 27일 박인희, 들길을 걸을 때의 기쁨과 평온을!"
나는 이렇게 적었다.
해인이가 내게 '이 다음에 죽으면 나도 이곳에 묻히게 돼' 하던 수녀원 묘지로 우리는 향했다. 묘지에서 우리는 뒤에서 올라오고 있는 수녀님들을 기다렸다. 솔방울을 매달아놓은 트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웃고 있었다.
"이 길은 베토벤 길이고, 저기 저쪽 길은 슈베르트 길이야" 작은 수녀님들이 붙인 이름이란다. 우리는 새로 발견해 냈다는 슈베르트 길을 따라 산길을 올라갔다.
묘지 위로 수풀이 우거지고 갈대들이 눈인사를 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묻힌 낙엽 사이로 삐죽이 손가락을 내민 파아란 쑥잎들, 산딸기의 연녹색잎.
조금 더 올라가니 담 곁에 노오란 개나리가 우리를 눈여겨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한 겨울에 노오란 개나리라니,
"박인희씨가 오셨다고 개나리도 피고, 겨울 속의 봄이네!"
한 수녀님이 소리쳤다. 수풀 속의 파아란 이끼가 전율케 한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구나!" 수풀을 헤치고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갈대 사이로 걸어 올라가는 일행을 보고 해인이가 소리쳤다.
"그래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니야,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순례자가 아닌가. 순례자의 길이 이렇지 않을까. 수풀과 덤불과 낙엽과 가시와, 그리고 숨이 가쁠 때면 살포시 얼굴을 내민 푸른 하늘을 잠시 바라보는 설레임. 산꼭대기에 오르니 부산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백섬, 해운대, 오륙도,... 바닷물빛이 아침과는 다른 짙푸른 빛이다.
무덤 앞에 나란히 서서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수녀님 한 분이 입고 계시던 앞치마를 살포시 벗어 마른 덤불 위에 깔아 놓으셨다.
"여긴 박인희씨 자리예요"
자신들은 덤불 위에 그냥 앉으면서 나에게는 곱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수녀님 앞치마 속에서 잘 구워진 쥐포 한 봉지가 나왔다. 수녀님들의 간식 1호란다. 제일 인기있는, 구수한 쥐포 한 봉지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타르치시아 수녀님이 숯불에 구우셨으니, 오죽 구수할까!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누가 먼저라는 약속도 없이 수녀님들의 고운 목소리가 산 위로 울려 퍼졌다. 메들리처럼 '
그리운 사람끼리'가 곱게 퍼졌다.

그리운 사람끼리
두 손을 잡고
마주 보고 웃음지며
걸어가는 길
두 손엔 풍선을 들고
두 눈엔 사랑을 담고
가슴엔 하나 가득
그리움이래

그리운 사람끼리
두 눈을 감고
도란도란 속삭이며
걸어가는 길
가슴에 여울지는
푸르른 사랑
길목엔 하나 가득
그리움이래

"박인희씨, '끝이 없는 길', 그 노래가 듣고 싶어요"
수녀님들이 나에게 청했다.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면
나를 두고 저만큼 또 멀어지네
아 -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 가도록 걸어가는 길

잊혀진 얼굴이 되살아나는
저만큼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바람이 불어와 볼에 스치면
다시 한번 그 시절로 가고 싶어라
아 -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 가도록 걸어가는 길
계절이 다 가도록 앉아 있는 길
앉아 있는 길
앉아 있는 길

모두들 말이 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하늘을, 산을, 무덤을, 마른 나뭇가지를 그저 바라보며 아무도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의 저쪽에서 누군가 조그맣게 혼자 얘기를 했다.
"맨 뒤에는 즉흥으로 노래하신 거구나, 마치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우리처럼..."
다시 아무도 말이 없다.
"계절이 다 가도록 앉아 있는 길, 앉아 있는 길..."
그 구절을 내가 다시 한번 읊조렸다. 우리들은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산에.
"노래 한 곡 더 듣고 싶어요. 자꾸 자꾸 듣고 싶어요"
비스듬히 옆으로 앉아 계시던 수녀님이 나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씀하셨다. 내 입에선 저절로 이번 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에 지은 노래 '우리 둘이는'이 흘러나왔다.

눈이 내려도
만날 수 없다
우리 둘이는
우리 둘이는

비가 내려도
만날 수 없다
우리 둘이는
우리 둘이는

그러나
눈 감으면 보이는 얼굴
가슴에 묻어 둔
그 한 사람

꽃이 피어도
만날 수 없다
우리 둘이는
우리 둘이는

낙엽이 져도
만날 수 없다
우리 둘이는
우리 둘이는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왜 여기 와서 이토록 이 노래를 자꾸 부르게 될까?
마치 수녀님들에게 들려주고픈 노래이기나 한 것처럼.
가슴에서 이 노래가 자꾸 술술 흘러나왔다.
"너무 슬프다아, 이 노래를 들으니까"
등뒤에서 누군가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를 위한 기도/ 박인희

  

주여
쓸데없이
남의 얘기 하지 않게 하소서

친구의 아픔을
붕대로 싸매어 주지는 못할 망정
잘 모르면서도 아는척
남에게까지
옮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속으론 철 철 피를 흘리는 사람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사람
차마 울 수도 없는 사람
모든 것을 잊고싶어하는 사람
사람에겐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가슴 속 얘기
털어 내 놓지 못하는 사람
가엾은 사람
어디하나 성한데 없이
찢기운 상처에
저마다 두팔 벌려
위로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말에서 뿜어나오는 독으로
남을 찌르지 않게 하소서

움추리고 기죽어
행여 남이 알까 두려워
떨고있는
친구의 아픈 심장에
한번 더
화살을 당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 기도시집『기도하면 열리리라』(율도국,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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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도 시는 1970년대 초 '뚜와에 무와'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박인희가 쓴 것으로 우리에겐 이해인 수녀와의 두터운 우정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박인환의 시를 노래한 ‘목마와 숙녀’ 그리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로 시작되는 ‘얼굴’ 이란 그녀의 자작시 낭송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해인 수녀와는 풍문여중 때부터 단짝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보통사람의 경우와 달리 주로 편지로써 서로의 생각과 우정을 교환하는 좀 특이한 관계였는데, 이해인이 수녀가 된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작 학교에선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다가 집에 가서야 서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고 합니다.

 

 이 시 역시 박인희가 이해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남다르게 무르익은 건 사실이지만 둘 다 성격이 안으로 꽉 들어차 글로서 깊은 교류가 이루어지다 보니 더러는 우리가 상상되지 않는 영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보통사람 이상의 섬세하고 민감한 성격을 가졌기에 예기치 않은 감정 마찰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가 이해인 수녀를 직접 겨냥한 글은 아니지 싶습니다.

 

 주위의 친구가 겪은 아픔을 대신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이 다른 친구에게 받은 상처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남의 불행이나 잘못을 은밀히 즐기는 심리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들은 수다와 뒷담화의 유혹을 참지 못하는 성향이 농후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커뮤니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의 반영 정도면 넘어가겠는데, 문제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악의적인 가십의 유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