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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 中에서 / 이외수
1.
감성의 궁극은 사랑에 있고, 사람은 반대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감성의 절대는 있어도 반대는 없다. 감성은 사랑의 발로이자 통로이다.
굳이 논리를 동원해 감성의 반대말을 찾는다면 사전적, 논리적
반대말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합리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단어는 이성의 영역에서는 통용될지 몰라도
감성의 영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2.
카뮈는 <이방인>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살인을
하게 만들고는 "이것이 죄냐?"라고 묻는다.
"이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작가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답을 도출하도록 질문만 던지는것이다. 영악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지혜다.
작가가 만약 "햇빛이 너무 강렬하면 살인을 할 수도 있다"라고 한다면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3.
소크라테스는 이미 3천 년 전에 명쾌한 답을 내놨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가슴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많은 것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고,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보다 더 명쾌한 답이 있을까? 모든 현자와 성자가 이걸 강조하고 있다.
만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만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떤 경우든 인간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없다" 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예술가는 사람을 행복의 방향으로 이끄는 안내자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고, 그 삶 자체가 거룩하다.
심지어 예술가는 예술을 위해 상처가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것조차 불사한다.
4.
고흐는 정말 외롭고 소외된 사람이었다.
그의 평생에 팔린 그림이 단 한 점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
지금 그의 그림이 천문학적인 금액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고흐에겐
아무런 상관도 없다. 중요한 건 그림값에 의해 평가되는 고흐가 아니라,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낸 그의 의지, 정신, 도전이다.
지금 그의 그림에 매겨지는 값이 천문학적이라 해도 그의 붓자국 하나
해석해내지 못한다.그가 왜 나선형의 밤하늘을 그렸는지, 왜 귀를 잘랐고,
왜 권총자살을 시도했는지, 그런 치열한 삶이 그의 그림에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설명해주는 건 그림값이 아니다.
5.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본성과 같고, 그게 곧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태양에너지가 닿지 않는, 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 해저의 물고기들은
화려한 디자인과 현란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걸 아름답고자 하는 본성, 조화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수심에도 조화하고, 물결에도 조화하는, 빛이 닿지 않지만
그들끼리 감응하고 조화하는 코드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감화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코드. 인간이 이걸 읽어내려면 순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6.
맹자는 성선설을 말하고 순자는 성악설을 주창했으나 현상을 얘기했을 뿐,
본질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걸 가지고 사람은 선하다, 사람은 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악하게 태어났다고 하면 선하게 되는 법을 찾고,
선하게 태어났다면 그걸 지속하는 법을 찾으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근원, 본질, 본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부처가 "사랑도 미움도 하지 말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나 미움은 현상일 뿐이다.
그 본성을 깨치면 사랑과 미움에 걸리지 않는다. 내 식으로 말하면
"사랑을 하라, 그러면 미움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본성은 사랑이다.
7.
장자가 "현상을 탐구하지 마라. 현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주는 생멸의 원칙에 의해 끊임없이 나고 죽고 하는 것이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무한한 존재로서의 우주를
현상으로는 절대 탐구할 수 없다.
유한한 잣대로 무한한 것을 탐구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본성을 깨달으면 절로 현상을 알 게 된다"고 한 이야기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본성은 결국 우주가 갖고 있는 원래의 모습이고, 그것은 만물이 모두 공유하고 있다.
먼지에도 있고, 우주에도 있고,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그 무엇이 바로 본성이다. 그것이 마음이다.
8.
완전한 인간의 조건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본성에 닿을 수 없다.
우주의 본성이나 인간의 본성은 똑같이 사랑이다.
사랑은 현상학적으로는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만물이 아름답다는 것은 사랑의 눈으로 보았을 때만 가능하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와 작용의 근원이 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동력으로 사랑이 지속적으로 복제된다. 이것이 우주가 존재하는 비밀이다.
사랑이 사라지면 인류도, 지구도, 우주도 사라진다.
가령 핵전쟁으로 인류가 전멸한다면, 인류를 절멸시킨 방법은 핵전쟁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사랑의 부재다.
9.
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욕망으로서의 꿈과 소망으로서의 꿈.
욕망으로서의 꿈은 대부분 개인적인 달성에 그친다.
소망으로서의 꿈은 개인을 넘어 다른 많은 사람에게 달성의 결과가 미친다.
꿈으로 달려갈 때는 반드시 시련과 고통이 일어나는데, 욕망을 좇는 사람은
시련과 고통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지고,
소망을 좇는 사람은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며 내면을 키우기 때문에
역량과 능력이 높아지는 만큼 꿈을 이룰 확률이 높아진다.
10.
날마다 오늘이 와서는 어제가 되고 오늘은 또 내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오늘을 아름답게 쓰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모두 아름답다.
시간이 당신의 주인이 아니라 당신이 시간의 주인이다.
항상 나를 위해 쓰는 오늘보다 남을 위해 쓰는 오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늘과 땅과 사람과 사랑에 대한 명제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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