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찻잔 속의 글

기생 자야를 사랑했던 백석 시인-길상사-법정스님

vincent7 2013. 7. 18. 01:47

 

기생 자야를 사랑했던 백석 시인     

 

청와대 뒷길 .
왜 있잔아 ~ 삼청동에서 북악스카이웨이로 올라가는 길에서 
삼청터널을 막 넘어가면
북악산 자락이 끝나는 성북동 기슭에 자리한 길상사
처음 가 보는 사람들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규모에 놀라지.
 
요정
술과 음기(淫氣)를 팔던 자리가

부처님을 섬기는 자리로 변한 것이 좀 의아하지만
그것도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한다.
불가에서 가장 성스럽게 치는 연꽃은
가장 더러운 진흙에서 피지 않던가 말이다

이 절은,
대원각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불명 吉詳花)이 죽기 전
법정 스님에게 기증하여 절로 탈바꿈한 곳이다.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寺刹)인 길상사. 
이 사찰의 이름은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吉祥華)를 본따서
길상사(吉祥寺)로 명명(命名)한 것이다.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길상사(吉祥寺)



김영한 (1915 -1999)


기명(技名)은 진향(眞香)이고 필명은 자야(子夜)이다.
그녀는 시인 백석을 지독히 사랑했던 기녀요,
백석 또한 그녀를 위해서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전한다.  
백석이 북으로 떠난 후 38선 때문에 그와 생이별한 그녀.
김영한은 백석을 잊기 위해 혼자서 대원각을 냈다는 소문이고
우리나라 제일의 요정을 일구어낸 여걸이었지만,


백석이 죽도록 보고 싶으면 그녀는 줄담배를 피워댔다고 한다.
그 담배 연기가 이 가련한 여인을 그냥 두었겠는가.
기어이 폐암으로 몰아 넣었다. 
죽음이 임박해지자 김영한은

자신이 운영하던 요정은 절에,  
자신이 만지던 2억원의 현금은

백석 문학상 기금으로 내놓는다. 

삶이 무어냐고 묻고 싶거든 길상사를 찾아 가면
수목 우거진 언덕 한켠에
김영한의 비석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삶이란 ~

그저 그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같은 것이라고... 


우리의 삶은
그저 스처가는 바람인 것을 ~~~~~


자야는
길상사가 문을 연지 2년만인 1999년 83세에
훌훌 서방 정토 세계로 떠난 여인.
백석을 위해 전생의 삶을 보낸 멋쟁이 여인이다.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눈이 하얗게 쌓인 길상사 앞 마당에 뿌려졌다.

 




 길상사 내의 김영한(법명 吉祥華) 기념비

 

김영한은 가난한 탓에 

약한 신랑에게 몸 팔려간 15살에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사이에

남편이 우물에 빠져 죽는 불운을 맞는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 끝에 눈물을 머금고
집을 나온 그녀는 기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가무와 궁중무를 배워

서울의 권번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시와 글, 글씨, 그림에도
재능이 뛰어난 미모의 기생이었다.


흥사단에서 만난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동경 유학까지 떠나게 되지만,
스승이 투옥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서 함흥감옥으로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함흥 영생여고보 교사들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영어교사 백석과 1936년 운명적으로 만난다.

백석은 옆 자리에 앉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속삭였다. 
"오늘부터 당신은 내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 우리 사이 이별은 없어요 ! "


그러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강제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켰으나, 

신혼 첫 날 밤부터 도망치기를 여러차례 하면서

부모에 대한 효심과 여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백석은 괴로워하다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만주로 도피하자고 제의한다.
그러나 자야는 백석의 장래를 걱정하여 함흥에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랬고, 백석은 결국 혼자 떠난다.


그 당시 백석의 심경을 

나타샤를 인용해 노래한 詩가 대표적 연애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라고 한다.

 

백석(본명 백기행 1912 -1995)은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도쿄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하고
1930년 조선일보에 시를 투고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잘 생긴 얼굴과 잰틀한 성품, 게다가 청산유수의 말 솜씨로
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댄디보이(Dandy Boy)였다.

 
그러나 백석(白石)은

많은 여인들 중 자야(子夜)만을 사랑했다.
백석의 아름다운 시(詩)는 시인과 기생의 정염(情炎)을 넘어
깊고 넓은 그리고 애틋한 사랑의 실체를 느끼게 한다.


해방이 되자

백석은 만주에서 고향 함흥으로 돌아왔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나 버렸고,

다시 자야를 찾아 서울로 가려 할 때는
38선이 그어져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다.
분단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서글픈 사랑으로 기록된다. 


그 후

백석이 북한체제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려진 바 없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월북한 탓에 그의 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교 영향을 받은 큰 시인이었다. 


생전에 김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 동안은 일체의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안았다고 한다.
자야는 백석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의 여인이었고,
그녀 또한 백석에 대한 사랑을

평생 올곧게 간직했던 여인 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숭고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그리고 길상사 한 쪽에 기념비로 남아서
길상화(吉祥華)처럼
길(吉)하고 상서(祥瑞)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은

 詩를 쓰는 일밖에 없다'
김영한은 말했다고 전한다.
그녀는 국악계에도 공헌을 했고, 김진향으로 더 알려져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서울] 길상사


삼각산 길상사 일주문



극락전







극락전







범종각







설법전



관세음보살상




길상사 개산 당시 천주교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씨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으로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음상이다.










길상보탑




























지장전














길상헌















길상헌은 시주 길상화 김영한님이 말년을 보내신 전각이다



침묵의집






시주 길상화 공덕비






적묵당








길상선원








육바라밀채



덕운 주지스님이 기거하시는 청향당



진영각



법정스님 진영을 모시고 유품을 전시한 전각






법정스님의 의자 (외벽에 전시된 사진을 촬영...내부는 촬영금지)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

 

 

인간으로 태어나 만고풍상 겪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게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모든 이에게 기억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삶이 빛나듯이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

 문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찌하면 평생을 올곧게 사랑할 수 있을까 ? 
백석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詩 /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자야. 김진향.본명은 김영한

 

 

길상사는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고급요정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성을 가졌던 대원각이다.



사랑 / 홍난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