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조선의 남아여! / 베를린 마라톤에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
(1936년 8월 10일 새벽신문호외 이면에 심훈이 쓴 즉흥시)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 치던 피가
2천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는
42.195km 코스를 2시간 29분 19초에 주파하고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함께 참가한 남승룡 선수는 3위를 차지했다.
심훈은 이 시를 쓴 달포가 지난 뒤인 1936년 9월 16일에
한을 머금은 채 세상을 떠났다
'글의 향기 > 찻잔 속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나도 풀처럼, 바람처럼 사랑하고 싶다. (0) | 2013.04.18 |
---|---|
'4월은 잔인한 달'의 유래 (0) | 2013.04.18 |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0) | 2013.04.15 |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0) | 2013.04.14 |
좋은 사람의 향기 (0) | 201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