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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있어도 눈물이 나고 같이 있는 분들도 울어줍니다. 안 되는 것에 도전한다는 게 너무 슬펐습니다.”
이규혁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32살의 나이. 국가대표로 뽑힌 지 20년. 숱한 국제대회에서 1위를 했지만, 다섯 차례 올림픽에서 결국 메달을 따지 못하고 기자회견장에서 회한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 대비해 ‘올빼미형’이던 수면습관을 ‘아침형’으로 바꾸고 구슬땀을 흘렸지만 결국 영광은 그를 모델로 삼았던 모태범, 이승훈 등에게 갔습니다. 그는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낸 뒤 나에게 고마워했지만 내가 배운 것도 많았다”고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안 되는 것에 도전한다는 것… 이 선수는 주종목인 500m 경기를 앞두고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정빙기 고장으로 1시간 반 동안 빙판에서 머물며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서 기운이 빠진 듯합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달렸습니다.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머리를 짓눌렀지만.
그러나 모태범이 금메달을 딴 것도 이영하, 배기태, 김윤만, 제갈성렬, 이규혁, 이강석 등이 쌓아온 대한민국 빙상의 내공(內攻)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이 계보가 이어지는 데 이규혁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고요.
스피드 스케이트뿐이겠습니까? 제가 어릴 적에는 동계올림픽은 서양인의 행사인 줄만 알았습니다. 숱한 도전이 씨가 되고 거름이 돼서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축구는 버마(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만 이겨도 난리였지요. 피겨스케이트와 수영에서 세계와 겨룬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만 해도 기사거리였지만, 지금은 대학병원의 전공의도 한 해 몇 편씩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지요. 우리 과학자들이 네이처, 사이언스, 셀, NEJM 등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도 실험기구가 없어 맨손으로 실험했던 선배, 이중논문 게재가 무슨 잘못인지도 몰랐던 그런 과정을 거쳐 하나하나 내공이 쌓였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내공이 쌓여 선진국에 진입한 것은 바로 이규혁처럼 안 되는 것에 도전하면서 때로 발자국을 남기고, 때로 좌절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이규혁이 “안 되는 것에 도전한 것이 너무나 보람 있었다”고 되돌아볼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이규혁 선수, 자랑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