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산행지 & 여행지/지리산

지리산 둘레길

vincent7 2010. 9. 17. 18:36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

지리산길(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16개읍면 80여개 마을을 잇는 300여km의 장거리 도보길. 2011년까지 각종 자원 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길 안내센터 (Jirisan Trail Information Center)

전북 남원시 인월면에 자리하고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는 지리산길을 찾는 이들에게

구간지도 제공,

지역정보 제공,

체험 프로그램 소개와 더불어

다양한 주제를 담은 전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또한 지역교류의 장이자

지리산길을 찾는 이들의 쉼터입니다.


안내센터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지리산길 여정에

안전하고 든든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인월 안내센터

이용시간 : 오전 9:30 - 오후 18:00 (점심시간 : 12:30 - 13:30)

휴무 : 매주 월요일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198-1번지 (590-843)

전화> 063-635-0850

전송> 063-626-0850


사단법인 숲길

주소 > 경남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공회당길 13-7

전화 > 055-884-0850

전송 > 055-884-0859

 

 

전 구간 지도

 

 

제 1 구간
'주천-운봉' 구간 정보 

거리 : 14.3km
예상시간 : 6시간 0 분
난이도 :중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km의 지리산길. 본 구간은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면서,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6개의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구간별 주요 지명 : 운봉읍 - 옛 양묘장 - 행정마을 - 서어나무숲 - 가장마을 - 질미재 - 덕산저수지 - 노치마을 -회덕마을 - 구룡치 - 솔정자 - 내송마을 - 주천면

운봉-주천구간은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있는 구간이다. 특히 10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자를 잇는 회덕~내송까지의 옛길(4.2km)은 길 폭도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경사도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솔숲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주천-운봉' 구간별 안내
  •  노치마을

    자세한 숙박문의는 마을 숙박시설 운영자에게 문의하여 주세요. 연락처 : 노치마을 오영록 011-9474-6676 노치구판장 : 063-626-0838

  • 가장마을

    자세한 숙박문의는 마을 숙박시설 운영자에게 문의하여 주세요. 연락처 : 가장마을 소순모 011-656-0993 (회관사용만 가능합니다.)

  • 외평마을

    약 600여 년 전 1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으나 농업용수가 마땅치 않았으나, 용궁마을에 장안저수지를 만들면서 식수 및 농업용수가 해결되어 마을이 번성하 시작하였다. 고려시대부터 숙성치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당시는 남원부) 원달리로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응양에서 말을 갈아타고 농협 창고 뒤편에서 쉬어가는 곳이어서 <원터거리>라 하였는데, 경치가 수려하여 감탄을 자아낸 곳이라 전한다.

  • 내송마을(안솔치)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 한양 조(趙)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그 후로 경주 김(金)씨, 서산 류(柳)씨 등 여러 성씨들이 차례로 들어와 30여 호 마을을 이루면서 주위의 비옥한 농토와 산림을 토대로 부유한 마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출신 조경남(趙慶南)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 개미정지

    내송리 서어나무 숲

  • 솔정자

    솔정자는 20여년 전만 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고 주천 들녘과 멀리 숙성치와 밤재를 바라보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던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도 한다. (솔정자를 마을 분들은 ‘솔정지’라고 한다.)

  • 구룡치

    구룡치는 주천면의 여러 마을과 멀리 달궁마을에서 남원 장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다. 달궁마을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 남원 장에 가려면 2박 3일에 걸쳐 다녀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룡치를 장길로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 (음력 7월 15일) 이 지나고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서 길을 보수해서 이용해 왔는데 지금도 예전의 보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 용 소나무

    소나무 한그루가 용틀임 하듯이 꼬여져 다른 소나무를 휘감는 보기드문 현상을 볼 수 있다.

  • 사무락다무락

    길을 걷다보면 돌들로 답을 쌓아놓은 ‘사무락다무락’을 만난다.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다무락(담벼락의 남원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 것으로 보이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지날 때 마다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 회덕쉼터

    오래된 느티나무 한그루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길을 걷는 중 쉬어가기 좋다.

  • 회덕마을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하여 살게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그 뜻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 노치마을

    조선초에 경주 정(鄭)씨가 머물러 살고 이어 경주 이(李)씨가 들어와 살게 되어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가 있으며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구룡치를 끼고 있다. 마을에서는 마을 이름을 “갈재”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는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치마을은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 비가 내려 빗물이 왼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다.

  • 덕산저수지

    주천면부터 이곳까지는 20년 전까지 운봉, 산내 사람들이 남원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이다.

  • 가장마을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터를 뜻하는 농막장(庄) 자를 써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의 천하명당이 있다고 믿고 있다. 30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동복 오(吳)씨와 강릉 유(劉)씨라고 하며 그 후 창녕 조씨와 김씨, 박씨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마을이 뱀 형국으로 마을 앞에 입석을 세워 뱀의 기를 눌러 마을의 액 막음을 하고 있다.

  • 버스타는곳

    운봉읍과 운봉읍을 거쳐 남원방면으로 갈 수 있다.

  • 서어나무숲

    행정마을에 있는 서어나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은 곳으로, 수백년된 서어나무들이 아름드리 줄지어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곳이다.

  • 버스타는 곳

    운봉읍과 운봉읍을 거쳐 남원방면으로 갈 수 있다.

  • 양묘사업장

    제방길을 걷다보면 산림청의 옛 양묘장을 거쳐 예전의 영화에서나 볼법한 70년대식 건물이 늘어서 있는 운봉 읍내 거리를 만나게 된다.

제 2 구간
'운봉-인월' 구간 정보 
 

거리 : 9.4km

예상시간 : 4시간 0 분
난이도 : 중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10km의 지리산길. 본 구간은 오른쪽으로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구간별 주요 지명 : 운봉읍 - 서림공원 - 북천마을 - 신기마을 - 비전마을 - 비전마을 - 군화동 - 흥부골자연휴양림 - 월평마을 - 인월면

 

운봉-인월구간은 너른 운봉들녘을 따라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호쾌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10km 전 구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되어 있어 길 폭이 충분히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길이고, 황산대첩비, 국악의성지, 송흥록 생가 등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다.

'운봉-인월' 구간별 안내

  • 서림공원

    비전마을~서림공원으로 이어지는 5km의 제방길은 너른 운봉 들녘을 적시는 젖줄인 람천을 따라 걷는 길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외에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볼 수 있다.

  • 북천마을

    운봉 읍내의 북쪽 냇가 마을. 소나무가 우거진 마을이라 벽송동(碧松洞). 객사가 있는 마을이라 객사마을로도 불리었다. 석장승 2개가 늠름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 신기마을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이 휴전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아직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런 때 이곳에 터를 잡은 입향조는 인동 장씨 장덕복(長德福)이었다. 영남의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이 바라보이고 우뚝 솟은 운봉 고원이 마을을 보호하고 만복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명당터인지라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 소(牛) 형국인 마을 북쪽 쇠잔등이가 잘려 마을의 쇠한 기운을 막고자 주민들이 직접 토성(土城)을 쌓았다.

  • 비전마을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마을 5리 전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 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 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 이곳에는 구한 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이 태어난 곳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으로 동편제의 고향으로 국악의성지가 있는 곳이다. 비전 마을이 동편제의 발상지가 된 것은 이곳 하마정과 무관하지 않다.

  • 군화마을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며서 13가구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 버스타는곳

    인월, 남원 방면으로 갈 수 있다.

  • 월평마을

    운봉에서 박씨가 처음 입주하고 새마을 신촌으로 불리다가 후에 마을 형국이 반월형이라 월평(月坪)이라 불렀다. 또는 마을 터가 동쪽 팔랑치를 마주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 월평(月坪)이란 마을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하였다.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이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람을 모아 살기 시작하였다.

  • 인월면

    인월면은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서울, 남원, 함양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인월에서 비전마을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의 7대 대로중 하나인 통영별로의 일부로 이 길은 비전에서는 여원재를 거쳐 남원, 오수, 전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고, 인월에서는 팔랑치, 함양을 거쳐 진주로 이어지던 옛길이다.

  • 운봉읍

    운봉은 1일과 6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서는데, 주로 운봉과 주천에서 많이 오며 각종 잡화, 곡물, 옷 등이 주로 팔리며 과거에는 목기와 곶감으로 유명하였다. * 지리산북부권역장 : 1,6일 - 운봉장, 2,7일 - 함양장, 3,8일 - 인월장, 4,9일 - 남원장, 5,10일 - 마천장이 서고 각종 장꾼들이 이지역의 장터를 빙빙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운봉-인월' 주변에 있는 지점

 

제 3 구간
'인월-금계' 구간 정보 

거리 : 19.3km
예상시간 : 8시간 0 분
난이도 : 중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를 잇는 19km의 지리산길. 시범구간은 지리산북부의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잇는 옛 고갯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6개의 산촌 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구간별 주요 지명 : 인월면 - 중군마을 - 수성대 - 배너미재 - 장항마을 - 장항교 - 삼신암 삼거리 - 등구재 - 창원마을 - 금계마을

인월-금계 구간은 제방길, 농로, 차도, 임도, 숲길 등이 전 구간에 골고루 섞여 있다. 또한 제방, 마을, 산과 계곡을 고루 즐길 수 있으며 2008년 기개통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 이미 널리 알려진 구간이다.


'인월-금계' 구간별 안내

  • 인월

    인월에서 월평마을 앞 1.5km의 제방길은 들판에서 지리산으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듯, 저 멀리 언뜻 보이는 천왕봉 자락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중군마을에 들어선다.

  • 중군마을

    전투 군단 편성에 있어 전군(前軍), 중군(中軍), 후군(後軍)이 있고 따로이 선봉부대가 있는 것이니, 그중의 중군이 임진왜란 때 이곳 마을에 중군(中軍)이 주둔한 연유로 인해 마을 이름을 중군리(中軍里) 또는 중군동(中軍洞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중군마을은 본업인 농사 외에도 잣과 송이 채취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하지를 지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동네 부인들이 머리에 키를 쓰고 마을 앞 냇가에서 통곡을 하면서 무제를 지낸 풍습이 있던 마을이다.

  • 황매암 삼신암 갈림길

    황매암쪽의 숲길 또는 삼신암쪽의 임도 길을 선택해서 걸을 수 있다.

  • 황매암

    중군마을 농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황매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지나 숲길을 걸어 수성대에 이른다. 수성대 계곡의 물은 현재 인근의 중군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으로 음용될 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다.

  • 수성대

    식수로 이용이 가능하고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렵다.

  • 배너미재

    배너미재(개서어나무) 수성대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은 전설에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배너미재이다. 배너미재는 운봉의 배마을(주촌리), 배를 묶어두었다는 고리봉과 함께 연결되는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는 배와 관계된 지명이다.

  • 장항당산

    (노루목 당산 소나무) 장항마을에서 만나는 당산 소나무는 지금도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 신성한 장소로 천왕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우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 장항마을

    마을 뒤 덕두산에 많은 사찰이 있었는데 1600년 경 수양하러 왔던 장성 이(李)씨가 처음 정착하여 개척을 하였다. 이후 각 성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산세의 지형이 노루의 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障)자를 써 '장항'이라 했다. 중군마을에서 배너미재를 넘어 도착하는 장항마을은 수려한 풍모의 소나무 당산이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장항마을에서는 지금도 매년 신성하게 당산제를 지낼 만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 버스타는 곳

    장항마을을 나오면 만나는 곳으로 인월로 갈 수 있다.

  • 매동마을

    고려 말과 조선 초, 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마을이다.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梅洞)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마을은, 각 성씨의 오래된 가문과 가력을 말해주듯 네 개의 재각과 각 문중 소유의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만수천변에는 조선 후기 공조참판을 지낸 매천(梅川) 박치기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지은 퇴수정(退修亭)과 그 후손이 지은 밀양박씨 시제를 모시는 관선재(觀善齋)가 있는데, 우거진 소나무들을 뒤로 두르고 앞으로는 만수천이 흐르며 발밑에는 흰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박치기의 생존 당대에는 정기적으로 일년에 한 번씩 시인묵객들이 이 정자 밑 너럭바위, 세진대(洗塵臺)에 모여 풍유를 즐겼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족히 일백 명에 달했다고 한다. 불과 삼사십 년 전만해도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맑은 물 위에 달이 떴다 지도록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산내면의 대표적인 생태농촌 시범마을로 지정돼 전통과 개발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마을이다.

  • 상황소류지쉼터

    상황마을의 다랑논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주능선을 볼 수 있다.

  • 창원마을

    넉넉한 곳간 마을. 창원. 조선시대 마천면내의 각종 세로 거둔 물품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는 유래에서 ‘창말(창고 마을)’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현재 창원이 되었다. 창고마을이었던 유래처럼 현재도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 농산촌마을이다. 다랑이 논과 장작 담, 마을 골목, 집집마다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줄지어 있고 아직도 닥종이 뜨는 집이 있다. 함양으로 가는 오도재 길목마을로 마을 어귀 당산에는 300여 년 수령의 너덧 그루의 느티나무와 참나무가 둥그렇고 널찍한 당산 터를 이루어 재 넘어가는 길손들의 안녕을 빌고 쉼터를 제공하는 풍요롭고 넉넉한 농심의 지리산촌마을이다.

  • 금계마을

    금계(金鷄)마을로 개명되기 전 마을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 사투리로 칠선계곡에 있는 마을(추성, 의중, 의탄, 의평)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노디)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촌사람들의 정을 징검징검 날랐을 노디가 세월에 씻겨 나가고 지금은 그 위에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인월-금계' 주변에 있는 지점

제 4 구간
'금계-동강' 구간 정보

거리 : 15.2km
예상시간 : 6시간 0 분
난이도 : 중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와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를 잇는 11km의 지리산길. 이 구간은 지리산 자락 깊숙히 들어온 6개의 산중 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만나는 길이다.

구간별 주요 지명 : 금계마을 - 의중마을 - 서암정사 - 벽송사 - 벽송사 능선 - 송대마을 - 세동마을 - 운서마을 - 구시락재 - 동강마을

금계동강 구간은 사찰로 가는 고즈넉한 숲길과 등구재와 법화산 자락을 조망하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 임도 등으로 구성된다.

유의사항
벽송사~ 소나무쉼터까지의 구간은 단체이용객들의 무분별한 농작물 채취 등, 주민피해가 빈번한 관계로 '미개통'구간이니 통행하실 수 없습니다.

'금계-동강' 구간별 안내

  • 동강마을

    자세한 숙박문의는 마을 숙박시설 운영자에게 문의하여 주세요. 연락처 : 동강마을 김태조 010-9363-6877

  • 의중마을

    고려시대 의탄소(義灘所)라는 지방특산물 탄(숯, 灘)을 중앙에 공납하기위해 만들어진 특수행정구역인 소(所)였다는 유래에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의중이라는 이름의 내역을 갖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의중, 의평, 추성마을을 지키고 이어주는 600년 묵은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고, 마을 안에는 당산 느티나무 신목이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뒤 산 쪽으로는 서암과 벽송사로 가는 숲길이 있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도로가 나있어 발길이 뜸해졌지만 절로 가는 숲길로서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듬뿍 묻어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 서암정사

    서암정사는 지리산 산맥 위 에 앉아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고, 한국의 3대 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한 고찰인 벽송사로부터 서쪽으로 600m 지점에 위치한 벽송사의 부속암자로 주위의 천연의 암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작은 부속암자였으나 지금은 사찰로 승격하였다.

  • 벽송사

    조선 중종 15년(1520년) 3월 벽송 지엄대사가 암자를 짓고 개창한 벽송사는 숙종 30년(1704년)에 실화로 불타버린 것을 환성대사가 중건하였으나 6.25때 다시 법당만 남기고 소실되었다.1963년 원응 구환스님이 이곳에 와 이 절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1978년 봄에 종각이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송사는 6.25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는데 국군이 야음을 타 불시에 기습, 불을 질러 당시 입원중이던 인민군 환자가 많이 죽었다고 전하며 지금도 절터 주변을 일구면 인골이 간혹 발견된다고 한다. 벽송사는 실상사와 더불어 지리산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판소리 ‘변강쇠전’의 무대이기도 하고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 소나무쉼터

    임도 중간쯤 너른 바위 사이에 자리잡은 400년된 소나무는 법화산 자락과 저 멀리 넘어온 등구재를 보고, 옛 선인들이 천왕봉을 오를 때 마다 거쳤다던 용유담과 엄천강을 넓은 조망으로 펼쳐놓는다.

  • 세동마을

    전형적인 지리산 산촌마을로 한 때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종이(닥종이) 생산지로 주변 산에는 닥나무가 지천이어서, 닥나무를 삶고, 종이를 뜨는 일로 분주한 마을이었다. 불과 50년 전 만해도 이 마을의 모든 가옥은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억새를 띠로 이어 얹은 샛집이었다. 종이 뜨는 일상과 샛집 지붕의 아름다운 산촌 풍경을 이젠 볼 수 없어도, 바위를 담으로 이용한 집, 너럭바위에 앉은 집, 바위틈으로 솟는 우물 등 ‘자연 속에 세 들어 사는’ 산촌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없다.

  • 운서쉼터

    세동마을에서 농로를 따라가면 작은 산골마을인 운서마을에 다다른다.

  • 운서마을

    휴천면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좁은 마을로, 마을 전체 면적의 3/1이상이 지리산국립공원구역내에 있으며, 그 외도 산악지역이라 농경지가 별로 없는 마을이다. 산에 의지해서 생활을 하며, 지리산을 닮아 인심이 포근하다.

  • 구시락재

    운서에서 구시락재를 넘어 동강마을에 이르는 길은 조선말 유학자인 김종직 선생이 지리산을 오르고 쓰신 [유두류록]에 나오는 옛길이다.

  • 동강마을

    동강(桐江)마을은 평촌과 점촌 그리고 기암(개암터)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동강이라 하였다. 조선 고종때는 엄천면이라 하여 엄천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어 공무와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곳이다. 강과 산이 함께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금계-동강' 주변에 있는 지점

 

제 5 구간
'동강-수철' 구간 정보
거리 : 11.9km
예상시간 : 5시간 0 분
난이도 : 중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와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를 잇는 12km의 지리산길. 이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걸으며 산행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걷는 산길로,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르는 길이다.

구간별 주요 지명 : 동강마을 - 점촌마을 - 방곡마을 - 상사폭포 - 쌍재 - 고동재 - 수철마을

 

 

'동강-수철' 구간별 안내

  • 지리산유

    동강-수철구간 점촌마을(자혜교 부근)에 있는 민박집 "지리산 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 28번지)입니다. 자세한 문의는 055-973-3309 또는 010-2590-7596으로 연락 바랍니다. 식사도 가능하며, 미리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신틀바위

    짚신을 만들때 사용하던 틀과 그 모습이 닮아 '신틀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신틀 : 미투리나 짚신을 삼을때 신날을 걸어 놓은 틀

  • 점촌마을

    동강리 점촌마을

  • 추모기념관

    방곡마을에 도착하면 산속에 커다란 시설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함양산청사건추모기념관'이다. 한국전쟁 중 양민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으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 사폭포

    방곡에서 상사폭포까지 2km의 숲길은 계곡을 따라 온갖 야생화들과 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를 보며 걷는 즐거움을 준다. 상사폭포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함이 담긴 전설이 깃든 작은 폭포이다.

  • 쌍재

    쌍재는 예전 함양 휴천쪽에서 산청으로 가던 길로 상당히 큰 대로가 있었고 쌍재에는 주막과 제법 큰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 산불감시초소

    양쪽으로 탁 트여있는 전망으로 왼쪽으로 산청읍내 전체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지리산 동북부 능선들이 그림같은 조망을 연출한다. 참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은방울 꽃 군락지를 즐기며 가다보면 고동재에 이른다.

  • 고동재

    수철동 서북쪽에서 방곡리로 가는 고개로 고동형으로 생겼다고 '고동재'라 이름 붙었다 한다.

  • 왕산, 필봉 조망

    왕산과 필봉을 보며 걸을 수 있다.

  • 수철마을

    수철마을은 본래 산청군 금석면의 지역으로서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철점이 있어서 무쇠점 또는 수철동이라 불리었다. 가양왕국이 마지막으로 쇠를 구웠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지리산길의 또 다른 연결을 기다리는 마을이다.

  • 동강마을

    동강(桐江)마을은 평촌과 점촌 그리고 기암(개암터)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동강이라 하였다. 조선 고종대는 엄천면이라 하여 엄천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어 공무와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곳이다. 강과 산이 함께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