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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