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주머니속의 애송시

유월이 오면...도종환

vincent7 2014. 5. 26. 10:57

 

 

 

 

 

 

 

   


 

 

 

 

 

유월이 오면...도종환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저녁 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도종환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름답게 빛나는 시절이 짧다는 것이다.

 

많은 꽃나무들이 그렇듯 사람도 아름다운 시절은 짧다.

 빛나는 시절은 짧고

그 시절을 추억으로 지니며 사는 날들은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날들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초조해하고 조바심을 낸다.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꽃 주위에 사람이 많고

향기를 좇아 발길이 모여들다가

바람과 꽃숭어리를 툭툭 떨구고 나면

조금씩 찾아오는 발길이 줄어들고,

꽃 진자리에 비슷비슷한 잎들이 돋아날 때쯤이면

찾는 이가 없게 된다.

 

 가까이 다가와서 바라보지 않으면

저 나무가 살구인지 산수유인지 구분이 안 되고

목련인지 함박꽃나무인지 분간이 안간다...

 


그러나 꽃나무에게 꽃피던 짧은 날들만 소중하고

꽃을 잃고 지내야 하는 그 많은 날들이 의미 없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나무에게 있어서 꽃피던 날들만이 아니라

잎이 무성하던 날들도 열매를 맺으려

 고통스럽던 날들도 그 열매를 지키기 위해 견뎌온 날들도

다 소중한 것이다.


진정으로 나무를 사랑한다면

우선 나무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어야 한다.

꽃이 아니라 설령 잎마저 지고 열매마저 다 잃고 난 뒤에

빈 가지만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서 있어도,

 

그리하여

정말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는지 알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나무는 나무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다.

그렇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게 소중하게 보듬을 줄 아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Billities/Anne V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