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주머니속의 애송시

숲에 들다 / 박두규

vincent7 2013. 10. 27. 08:57

 

 

 

 

 

 

 

 

 

 

 

 

 

그대 눈부신 속살에 들면

편백나무 서늘한 그늘 어디쯤에

정처 없는 것들의 거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생각이 무사하기를 빌며

그대 앞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대 안에 드는 일이 두렵기도 하나

단지, 때가 되어 어미의 자궁 밖에 나왔던 것처럼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뿐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또 날이 저물었을 뿐이다

 

그대의 어디쯤에

달빛에 빛나는 지붕 하나가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 들어 내 눈부신 맨몸을 볼 수 있다면

사랑한 사람들의 이승을 떠난 것도

잠 못 이루는 짐승들의 매일 밤 울음소리도

그대에 이르기 위한 육탈(肉脫)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리

 

강줄기를 타고 오는 한 줄기 바람에도

이승의 한 십 년을 뚝, 떼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숲에 쌓인 무수한 잎들의 신음소리가

나의 일상으로 진입해 오고

해가 지는 세상의 두려움 위로

설레는 가슴은 늘 두근거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허물을 벗고

단 한 번의 해가 오로지 나에게로 올 것을 믿는다

나는 달이 뜨는 그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에 들다 / 박두규